“여유있는 집이 전기료 덜 내더라”…누진제 개혁 이뤄질까

입력 2019-01-30 17:59
수정 2019-01-30 18:05


(서민준 경제부 기자) 정부는 지난달 ‘전기요금 누진제 테스크포스(TF)’를 꾸려 주택용 전기요금제 개편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전기 사용량이 많을수록 요금이 급격하게 오르는 누진제가 주요 개편 대상입니다. 현재 주택용 전기요금은 전력 사용량에 따라 200㎾h 이하(1구간)면 ㎾h당 93.3원, 2구간(201~400㎾h)은 187.9원, 3구간(400㎾h 초과)에는 280.6원을 각각 적용하고 있습니다. 3구간은 너무 높고 1구간은 너무 낮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았죠.

이와 관련 정부는 제도 개편에 앞서 1만 가구를 상대로 실태조사를 했습니다. 조사 결과 상식에서 벗어나는 전기료 납부 패턴이 나타났습니다. 일반적으로 소득이 많을수록 전기를 많이 쓰고 전기료도 많이 낼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에 배치되는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한국전력 관계자는 “아직 실태조사 결과를 분석 중이긴 하지만 가구소득과 전기료 간 연관성이 약하게 나타났다”며 “가구원 수가 많은 저소득 가구가 전기료를 많이 내고 가구원 수가 적은 중산층이 적게 내는 경향이 강했다”고 전했습니다. TF의 한 관계자는 “공공기관 지방 이전으로 지역에 혼자 사는 공무원, 소득 여유가 있지만 결혼을 안하고 혼자 사는 30~40대가 늘면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실태 조사 결과는 누진제를 근본적으로 손봐야 할 필요성을 키웁니다. 누진제는 전기 절약을 유도한다는 목적 외에 ‘소득이 높으면 전기료도 많이 물려 소득재분배 효과를 거두자’는 취지로 도입됐습니다. 그런데 여유있는 집이 전기료를 덜 낸다면 누진제를 유지할 명분이 없어지는 것이죠. 이런 점 때문에 TF는 누진제를 폐지하거나 유지하더라도 현재 3배에 이르는 누진율을 대폭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즉 모든 가구의 전력량 요금을 똑같이 맞추거나 1구간과 3구간의 요금 차이를 좁히자는 것이죠.

이럴 경우 1구간에 속한 가구의 전기료 인상이 불가피해 반발이 일 수 있습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환경대학원 교수는 “저소득층에는 전기료 보전 등 복지 정책을 확대해 지원하면 되지 소득 수준이 혼재돼 있는 1구간의 전기료 자체를 낮게 유지할 필요는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김종갑 한전 사장이 지난 29일 “전기요금 체계를 정상화하고 (도움이) 필요한 가구에 대해 지원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누진제 개편으로 3구간에 속한 가구의 전기료가 줄어 전력 과소비를 부추길 것이란 우려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에너지경제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 주택용 전기 사용량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절반밖에 안돼 상당수 가구가 충분히 절약하고 있다”며 “누진제를 폐지하더라도 여름 겨울철 1000㎾h 초과 ‘슈퍼유저’에 적용하는 높은 요금제를 유지하면 과소비는 어느 정도 억제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끝) /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