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행 노동조합이 노동이사제를 들고 나왔다. KB금융노동조합협의회는 엊그제 주주제안을 통해 백승헌 변호사를 사외이사로 추천한다고 밝혔다. 노동이사를 통해 경영과 지배구조에 개입할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노조는 “금융위원회의 지배구조 개선 권고에도 실질적인 개선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노동이사제를 들고나온 이유를 밝혔다.
‘귀족 노조’ 파업으로 눈총을 받았던 국민은행 노조는 사측과 임단협에 잠정 합의했다. 임금인상률, 임금피크제 도입 시기 등에서 노조 측 주장이 대부분 수용됐다. 사측이 얻어낸 것은 페이밴드(직급 호봉 상한제) 전면 폐지를 막은 정도다. 하지만 정규직 전환자 근무경력 인정과 함께 5년 유예하며 논의키로 한 만큼 사측 주장이 관철됐다고 보기 어렵다.
“파업을 돈으로 막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당초 사측은 임원 전원이 사표를 제출하며 파업에 강력 대응하는 듯했지만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무엇보다 파업에도 불구하고 업무 차질이 거의 없었는데도 노조 요구를 대부분 수용한 것은 회사 측의 일방적 양보라는 지적이 나온다. 게다가 2014년 이후 입사자에게 페이밴드 진입 시기를 5년 늦춘 것은 임금 유연성을 거꾸로 돌린 조치다.
채용비리 문제 등으로 약점이 잡혀 있는 사측이 노조와 강대강(强對强)으로 맞서기보다 ‘좋은 게 좋다’는 식의 미봉책을 택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주인 없는 회사에서 나타나는 모럴 해저드라고밖에 볼 수 없다. 노조가 과거 두 차례나 부결됐던 노동 이사제 문제를 다시 들고나온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회사 측이 약한 모습을 보이니 이참에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밀어붙이겠다는 속셈일 것이다. 노동이사제가 관철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만약 실현된다면 국민은행의 ‘노사 간 나눠먹기’는 더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
이번 파업의 아이러니는 ‘파업에도 이상 무(無)’라는 인력 과잉을 스스로 알렸다는 점이다. 이런데도 맥없이 노조에 덜미를 잡힌 ‘리딩뱅크’가 다른 은행들에까지 나쁜 선례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은행들의 책임경영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