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차등화 어렵다"는 정부의 5대 불가론…과연 합당할까

입력 2019-01-22 17:36
(1) 업종별 - 저임금 업종 낙인?
음식업 34% 이미 최저임금 미만…소상공인 과밀업종 시행할 만

(2) 지역별 - 지역갈등 유발?
대도시-시골 임대료 격차 커…광역단위 구분하면 부작용 줄어

(3) 연령별 - 나이로 차별 불가?
2005년까진 18세 미만에 적용…"임금보다 고용" 고령층도 가능

(4) 규모별 - 고용악화 초래?
5인 이상 사업장에 적용하면 기준 벗어나려 고용 줄일 우려

(5) 국적별 - 근로기준법 위반?
숙식비만 최저임금 일부 산입…기숙사 제공도 포함시켜야


[ 백승현 기자 ]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7일 소상공인연합회를 방문해 “최저임금 차등 적용은 사실상 어렵다”고 했다. 최저임금 급등에 따른 보완책을 호소해온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게 ‘불가’ 통보를 한 것이다. 홍 부총리는 그러면서 “업종 지역 규모 나이 국적 등 다섯 가지 변수를 두고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검토했지만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되기 어렵다고 결론내렸다”고 했다. 구체적인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홍 부총리가 말한 다섯 가지 변수를 두고 정부가 불가하다고 결론내린 게 합당한지, 합당하지 않다면 어떤 방안이 있는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따져봤다.


업종별 차등화는 현행법으로 가능

업종별 차등화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의 직접 영향권에 있는 영세 중기·소상공인의 ‘제1 요구사항’이다. 법적 근거도 있다. 최저임금법 4조 1항은 ‘최저임금은 사업의 종류별로 구분하여 정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최저임금 제도 시행 첫해인 1988년에는 제조업을 저임금그룹(식료품, 섬유, 신발 등 12개 업종)과 고임금그룹(석유, 화학, 철강 등 16개 업종)으로 구분해 적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30년 넘게 단일 최저임금을 유지하고 있다.

정부가 업종별 차등 적용 요구를 거절한 이유는 저임금 업종에 대한 ‘낙인효과’와 관련 연구·통계 인프라 부족 때문이다. 산업이 고도화하면서 업종별 경계가 모호해진 것도 이유로 꼽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지금까지 관련 실태조사를 한 적이 없다. 통계 부족이 아니라 정부의 의지 부족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해외에서는 일본을 비롯한 캐나다, 호주, 네덜란드,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 이미 업종별 최저임금을 적용하고 있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부작용 우려도 있지만 중기·소상공인은 생존권 차원에서 업종별 차등화를 주장하는 것”이라며 “전면 시행이 아니라도 편의점, 미용실 등 소상공인 과밀업종이나 단순 아르바이트가 많은 업종에 대해선 검토할 만하다”고 말했다.

연령별 차등화도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2005년 법 개정 이후 사라졌지만 1988년 제도 시행 이후 18세 미만 근로자에게 차등 적용해온 경험도 있다. 영국, 프랑스, 벨기에, 일본, 칠레 등도 연령별로 최저임금을 달리 책정하고 있다. 다만 연령별 구분을 하더라도 단순히 나이가 아니라 근로 성격에 따라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청년 중에서도 생계 목적인 아닌 아르바이트 인력에게 별도의 최저임금을 책정하는 방식이다. 중소기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장년층의 경우 높은 인건비에 부담을 느끼는 중소기업과 임금이 다소 낮더라도 취업을 원하는 고령 인력은 이해관계가 맞아 구분 적용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영계서도 엇갈리는 지역별 차등화

현행법으론 지역별 구분 적용이 불가능하다. 당초 1986년 법 제정 당시 업종·지역별 구분 적용을 검토했으나 지역감정 유발 우려 등을 이유로 ‘지역별’ 조항이 빠졌기 때문이다. 30년 넘게 지났지만 아직도 같은 이유로 지역별 구분 적용은 논의 테이블에도 오르지 못하고 있다.

지역별 구분 적용은 경영계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편의점 등을 운영하는 소상공인은 지역별 차등화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한 시간에 수백 명의 손님이 찾는 대도시 상권의 편의점과 하루종일 몇 명밖에 오지 않는 시골 편의점 임대료와 매출이 다르듯이 최저임금도 차등화해야 한다는 요구다. 반면 만성적인 인력난에 시달리는 지방 중소기업은 노동력 유출에 따른 인력난 심화를 우려하고 있다.

지역별로 최저임금을 달리하는 나라는 미국, 중국, 일본, 캐나다 등이다. 미국, 중국 등에 비해 영토가 작은 일본은 지역별 최저임금을 지역 생계비와 통상 사업의 임금 지급능력을 고려해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정부가 지역별 차등화에 난색을 보이는 것은 경제 규모와도 관련이 있다. 미국, 일본 등과 달리 한국은 전국이 ‘일일생활권’으로 하나의 경제공동체인 데다 지역별 노동력 수급의 왜곡을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도 작용했다. 이런 우려를 감안해 업종·지역을 병합해 최저임금을 달리 적용하는 대안도 있다. 노 연구위원은 “소상공인에 한해 지역별로 구분 적용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며 “지역별로 구분하더라도 대상 지역은 2~3개 그룹 정도로 최소화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사업장 규모별·국적별로 가능할까

사업장 규모별로 차등화하자는 주장은 현재 모든 사업장 대상인 최저임금법 적용 대상을 근로기준법과 같이 5인 이상 사업장으로 축소해달라는 게 골자다. 이렇게 되면 4인 이하 근로자를 고용한 영세 사업자의 부담은 즉시 해소될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영세기업들이 적용 기준을 맞추기 위해 고용을 줄이는 ‘문턱효과’가 생길 것이란 우려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행정력의 한계도 규모별 차등화의 걸림돌이다. 최태호 고용노동부 근로기준정책과장은 “영세사업장은 고용 규모가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법 준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행정력이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급등에 따라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구분 적용 필요성도 거론된다. 내국인과 마찬가지로 최저임금을 줘야 하는 것은 물론 추가로 숙식을 제공하는 사례가 많아 내국인 역차별 논란도 있다. 하지만 국제노동기구(ILO) 협약과 근로기준법에 따라 ‘국적을 이유로 한 차별’은 불가능하다.

김강식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는 “독일은 ‘계절노동’ 조항을 두고 가을 수확기에 한해 숙식비를 최저임금에 포함하거나 최저임금 적용을 유예하고 있다”며 “사실상 외국인을 겨냥한 정책으로 시사점은 있지만 국내 외국인 근로자는 연중·상시적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