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기관들이 자료수집 등의 명목으로 벌이는 행정조사가 연간 600건을 넘는다고 한다(한경 1월14일자 A1, 5면). 2014년 542건에서 매년 늘어 2017년 609건, 지난해에도 602건에 이르렀다. 여기엔 사정기관으로 분류되는 청와대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기관 국세청 등과 지방자치단체의 조사 건수가 빠져 있어, 얼마나 빈번한지 실태 파악도 안 돼 있다. 규제보다 더한 규제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행정조사가 필요한 경우도 있겠지만, 문제는 법 위반 여부와 관계없이 투망식 조사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기업을 ‘잠재적 범법자’로 간주해 전방위 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털어서 걸리면 처벌하는 식이다. 그렇다 보니 무차별 자료 요구, 강압적 현장조사, 중복조사 등이 빈번하다. 당하는 기업들로선 압수수색과 다를 바 없다.
구체 사례를 보면 그럴 만도 하다. 지난해 공정위는 2000여 개 전 상장사에 3년치 내부거래 자료를 요구했다. 또 일감 몰아주기 실태조사를 한다며 ‘5년치, 100만원 이상 거래내역’을 요구해 225개 기업에서 12만여 건을 받아냈다.
이런 행태는 역대 정부마다 아무리 규제개혁을 외쳐도 현장에서 체감하지 못하는 원인이 된다. 규제 이전에 행정조사가 방법부터 낙후됐고 행정편의적인 탓이다. 기업들로선 조사 사실만으로도 신인도 하락, 매출 감소 등 타격을 입지만 하소연할 곳도 없다. 2007년 제정된 행정조사기본법에 과잉조사 금지, 피조사자 보호 등의 장치가 미비돼 있어서다.
정부기관들이 ‘조사 권력’을 남용하는 것은 국가의 횡포로 봐야 마땅하다. 미국 일본 등에선 행정조사의 절차·범위를 법률에 엄격히 규정하고, 자의적 조사와 자료 임의제출을 금지한다. 뒤늦게 우리나라 국회도 조사권 남발 금지, 조사거부권, 미란다원칙, 사정기관 면책 철폐, 피해 보상 등을 반영한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툭하면 조사권을 발동하는 ‘행정 적폐’를 이참에 뿌리 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