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장사도 9시면 끝난다[카드결제로 본 삼시세끼(下)]

입력 2018-12-04 08:54
정시 퇴근·워라밸 확산으로 '칼퇴 문화' 확산
저녁시간 7~8시…6년 사이에 1시간 빨라져
"잘 쉬어야 힘난다", 칼퇴족 붙잡는 유통업계




3년차 직장인 이모 씨(29)는 올해 들어 부쩍 저녁 약속이 줄었다.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이후 부서 회식이나 거래처 접대 빈도가 크게 줄어서다. 이 씨는 "2년 전 입사했을 때만 해도 저녁에 밥 먹고 술집으로 직행하는 게 일상이었다"며 "그런데 요새는 저녁식사만 같이 하고 헤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최근 주방 설거지 구인 공고를 낸 자영업자 하모 씨도 "주 52시간 근무제 영향으로 구인 공고를 내면서 주방일 퇴근 시간을 오후 9시30분으로 앞당겼다"면서 "이보다 늦게 퇴근하면 특근 처리된다"라고 전했다.

◆ "2·3차 회식, 이제 그만!"…1시간 빨라진 저녁시간

정시 퇴근 문화가 확산되고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이 직장을 선택하는 중요한 요소로 떠오르자 저녁 외식 시간대가 빨라지고 있다.

신한카드가 2012년, 2015년, 올해 각 3분기 점심시간 외식업계 카드 결제 1억8000만건을 분석한 결과, 저녁 시간대(오후 5∼10시) 카드 결제가 가장 많은 때는 2012년 오후 8∼9시(28.7%)에서 올해 오후 7∼8시(26.1%)로 1시간가량 앞당겨졌다.

저녁 외식 시간은 눈에 띄게 빨라지고 있다. 오후 5∼8시 사이 결제 건수가 2012년 48.7%에서 올해 58.9%로 10.2%포인트 증가했다. 세부적으로 오후 6∼7시가 4.7%포인트로 가장 많이 뛰었고, 오후 5∼6시도 3.9%포인트 불어났다.

반면 오후 9∼10시는 6.3%포인트, 오후 8∼9시는 3.9% 각각 하락했다. 연령별로는 40대(11.0%포인트)와 30대(10.2%포인트)가 오후 5∼8시 외식하는 비중이 가장 많이 늘어났다.

업계 관계자는 "점심과 마찬가지로 저녁시간대도 빨라지는 추세"라며 "저녁 회식 등이 1,2차 등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른바 '2차 문화'가 확 줄어든 영향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주택가 주변의 편의점들도 정시 퇴근 문화에 수혜를 보고 있다.

편의점 CU(씨유)가 지난 7월~11월 저녁 시간대(18시~21시) 매출이 높은 주요 상품들의 매출증가율을 분석한 결과, 도시락의 경우 주택가와 오피스 지역 매출이 전년 대비 각각 19.8%, 10.2% 증가했다. 집에서 밥을 먹는 직장인들이 늘면서 같은 기간 반찬류 매출은 111.0% 늘었고, 도시락과 라면 등도 각각 19.8%와 16.0%씩 늘었다.

◆ "잘 쉬어야 힘난다"…'칼퇴족' 공략하는 유통업계

넉넉해진 저녁 시간을 문화생활로 즐기는 직장인들도 늘었다. 야근이 잦았던 과거에는 엄두도 못낼 일이었다.

직장인들은 이제 "저녁 여가생활을 통해 직장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들은 퇴근 후 백화점 등에서 문화 강좌를 듣거나 자기계발 등 여가생활에 돈을 쓰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유통업계는 가성비 높은 전문 강좌를 확대해 고객 잡기에 나서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올해 가을학기(9~11월) 문화센터 강좌를 지난봄(3~5월)·여름(6~8월) 학기 대비 50% 이상 늘렸고, 신세계백화점도 가을학기 워라밸 관련 강좌 비중을 10∼15%가량 확대했다. 현대백화점 역시 1회 1~2시간만 교육을 진행하는 '원데이 특강' 강좌를 늘렸다.

백화점 관계자는 "올 가을학기 지난해 8% 수준이었던 20~30대 비중이 두 배 이상 증가했다"며 "최근 야근과 회식을 줄이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52시간 근무 제도를 시행하는 기업이 늘어나면서 일찍 퇴근하는 직장인들이 문화센터로 몰리고 있는 것 같다"라고 전했다.

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rrang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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