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악덕채권자’로 불리는 좌파 지지집단과의 정면충돌에 직면해 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 52개 단체로 구성된 민중공동행동이 12월1일 국회 앞에서 대규모 정부규탄대회를 예고했다. 민중공동행동은 “‘촛불’이 제시한 재벌·노동정책을 후퇴시키고 있다”며 재벌체제 청산, 규제프리존법 폐지, 탄력근로 확대 금지 등 10개 분야 41개 요구사항을 내놨다. 정부가 밀어붙여온 반(反)기업·친노조 성향 정책들에 대해 “그 정도론 안 된다”며 더 큰 청구서를 들이민 것이다.
정부가 그나마 공급측면의 경제활성화 정책으로 약속했던 ‘혁신성장’은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찔끔’ 규제완화 외에는 이렇다 할 조치를 내놓은 게 없다. 그런데도 좌파집단들이 결사체를 만들어 정부가 ‘친재벌, 반개혁’으로 선회했다며 대규모 집회를 예고한 상황에 기가 막힌다. ‘투쟁’ 방식도 기가 막히기는 마찬가지다. “학익진(鶴翼陣)처럼 갈라졌다가 국회를 포위하는 투쟁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에 ‘선전포고’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
정부가 지난 1년6개월여의 국정을 통해 ‘공허한 이상과 냉엄한 현실 사이의 괴리’를 깨달았다면 오히려 혁신성장에 제대로 속도를 내는 게 마땅하다. 허울뿐이었음이 분명해진 소득주도성장정책과 기업들의 숨통을 막는 지배구조 간섭 등 ‘공정경제’도 궤도를 수정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핵심 지지세력에게 할 말은 하고 고통분담에 나서도록 설득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지 못한다면 혁신성장도, 규제 혁신도, 양질의 일자리 창출도 공염불이 될 것이다.
독일과 네덜란드의 좌파정부들은 핵심 지지세력이었던 노조를 설득해 하르츠개혁과 바세나르협약을 이끌어내며 기울어가던 국운을 되살려냈다. 당장의 정치적 셈법에 연연하지 않고 재도약의 기틀을 마련하는 결단을 내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했기에 두고두고 세계의 모델이 되는 업적을 이룬 것이다. 이와 반대로 집권시절 노조 등 지지세력에 휘둘려 근시안적 포퓰리즘 정책을 퍼부어댄 일본 민주당과 프랑스 사회당은 존재조차 찾기 힘들 정도로 궤멸됐다. 이런 엄연한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