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수 경제교육연구소장
[ 문희수 기자 ]
결국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고용, 가계 소득 모두 그렇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 10월 취업자는 전년 동월보다 고작 6만4000명 늘었다. 고용률은 61.2%로 9개월 연속 떨어져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장기간 하락세라고 한다. 더욱이 실업률은 3.5%로 2005년 이후 가장 높다.
소득분배는 더 나빠졌다. 정부가 역점을 두는 취약계층의 소득이 유독 감소한 탓이다. 지난 3분기 최하위 20% 가계의 명목소득은 1년 전보다 7.0%, 하위 20~40% 계층은 0.5% 줄었다. 이보다 상위 계층의 소득은 모두 증가한 것과 극명하게 대조된다. 이에 따라 5분위 소득배율 기준 소득분배는 역대 최악이다. 정부 의지와는 반대로 취약계층일수록 가장 큰 고통을 겪고 있다는 얘기다.
소수에 포획된 정책들
진작부터 우려됐던 바다. 이젠 “고용의 질은 개선되고 있다”는 식의 정부 변명도 쑥 들어갔다. 애써 강조하던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조차 줄었으니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초라한 통계 발표 전에 ‘경제의 투 톱’을 선제적으로 교체한 것은 어느 정도 위기의식을 반영한 것도 같다.
그렇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오히려 모처럼 추진하려던 게 후퇴하는 기류다.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여·야·정 국정 상설협의체에서 처음 합의했던 연내 탄력근로제 확대가 민주노총의 반발에 없던 일이 돼 버린 게 그런 사례다. 양대 노총은 전체 근로자를 대표하지 못한다는 오랜 지적에다 최근에는 일부 노조의 이른바 고용세습 비리로 국회 국정조사까지 예정된 마당이다. 전 국민이 대상이어야 할 국정의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다.
소수에 포획된 정책이 한둘도 아니다. 유례없는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협력이익공유제 등 친노동·반(反)고용 정책에다 탈(脫)원전, 심지어 산업·금융정책과 그 운영까지 일부 시민단체에 끌려가고 있다. 탈원전 같은 것은 국민 다수의 반대의사가 거듭 확인되고 대만의 폐지 뉴스가 들리는데도 꿈쩍없다. 자신들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이익단체에 마냥 휘둘린다. 정부가 기껏 이들을 향해 “이젠 약자가 아니다”고 호소할 뿐이라면 촛불 청구서 운운하는 지적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실패를 실패라고 말 못하니…
정부는 과거 성장은 낙수효과가 없다고 폄하하면서 취약계층을 위한 경제를 만들겠다고 큰소리쳤다. 그러나 과거보다 고용도 소득도 안 되는 경제가 돼버렸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 많은 학자와 전문가들이 안 되는 정책이라고 지적해도 강행하고 있는 소득주도성장의 민낯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줄어든 소득을 근로장려금, 자녀장려금 같은 정부 보조나 사회 부조로 메울 수도 없다. 이런 식의 대응은 지속성부터 문제다.
그런데도 아직 “더 기다리면 성과가 나올 것”이라거나 “폐기가 아니라 보완이 필요하다”는 궁색한 변명에다 심지어 “경제 실패라는 주장은 정치적 공세”라는 믿기 힘든 주장까지 나온다. 문제의 원인은 그대로 둔 채 엉뚱한 곳에서 처방을 찾으려 들면 새로운 부작용만 초래하게 된다. 곧 기준금리 인상이 결정되면 오래전부터 아킬레스건으로 지목돼왔던 가계부채 문제까지 현실화할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경제를 하려고 작정하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실패를 실패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희망이 없다.
많은 사람이 연말 송년회 시즌에 정치와 집값 얘기는 하지 말자는 다짐과 약속을 하고 자리에 나선다. 덕담과 격려를 하려 해도 딱히 할 말을 찾기가 힘들다. 참 답답하고 쓸쓸한 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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