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사진·궁중화…가려진 대한제국 미술을 들추다

입력 2018-11-14 18:41
'빛의 길을 꿈꾸다'展 덕수궁미술관서 15일 개막

근대 한국화 이끈 조석진·안중식
채용신·박승무·변관식·양기훈 등
작가 36명의 회화·공예 200점 소개

전통 기법과 서양의 화법 절충
'곽분양행락도' 등 처음 공개
'미스터 션샤인'서 고종 연기한 배우 이승준이 홍보대사 맡아


[ 김경갑 기자 ]
서구 열강의 탐욕에 나라의 주권이 풍전등화의 위기를 겪던 1897년 10월. 러시아 공사관에 1년간 체류하던 고종은 경복궁이 아니라 덕수궁(당시 경운궁)으로 환궁해 대한제국을 창건했다. 당시 고종의 심정은 어땠을까, 화가들은 어떤 방식으로 나라의 안위를 걱정했을까 궁금할 만하다. 우리 민족 최초의 근대 국가였음에도 제대로 된 평가는 고사하고 눈길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던 대한제국 시기의 미술을 집중 조명하는 전시회가 마련됐다. 15일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개막하는 국내 최초 근대미술 기획전 ‘대한제국의 미술, 빛의 길을 꿈꾸다’이다.

근대 한국화의 대가 소림 조석진과 심전 안중식을 비롯해 채용신, 박승무, 변관식, 양기훈, 이도영, 김규진, 김은호 등 국가적 혼란 속에서도 한국의 전통 미술을 지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작가 36명의 회화, 사진, 공예 등 200여 점을 엄선해 한국 근대미술의 진수를 보여준다. 전통적 화원화의 기법과 서양화법이 절충된 10폭 병풍 ‘곽분양행락도’, 근대기 사군자화의 대표작가 김규진이 찍은 고종 사진 ‘대한황제 초상사진’과 12폭 병풍 ‘자수매화병풍’ 등은 일반에 처음 공개된다.

전시장은 ‘제국의 미술’, ‘기록과 재현의 새로운 방법, 사진’, ‘공예, 산업과 예술의 길로’, ‘예술로서의 회화, 예술가로서의 화가’ 등 네 개의 주제로 나눠 꾸몄다.

‘제국의 미술’ 섹션에서는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바뀌며 발생한 미술의 변화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검은 익선관을 쓴 황룡포 차림의 ‘고종 어진’, 군복을 입고 불법을 수호하고 있는 호법신이 그려진 불화 ‘신중도’, 19세기 말~20세기 초 궁중회화의 새로운 경향을 반영한 작품 ‘곽분양행락도’, 1927년부터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해학반도도’ 등이 관람객을 반긴다. 미술관 측은 “왕에서 황제가 된 고종의 지위에 맞춰 황제와 황후에게만 허용되는 황색의 용포와 의장물이 어진과 기록화에 등장하는 변화를 엿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록과 재현의 새로운 방법, 사진’ 섹션에선 주로 고종을 비롯한 황실 인물들과 관련된 사진을 걸었다. 시대적 상황을 보여주는 육군 대장복 차림의 ‘순종황제’, 김규진의 ‘대한황제 초상사진’ 등이 눈길을 끈다.

대한제국 시기 공예품의 전반적인 양상과 변화에 관심이 있다면 ‘공예, 산업과 예술의 길로’ 섹션을 찾아보면 된다. 당시 고종은 근대화의 일환으로 공예부문의 개량을 추진했다고 한다. 문양은 조선후기 백자항아리의 전통을 따르면서도 기법은 근대기 도입된 스탠실(형태를 오린 뒤 물감을 채워 넣는 기법)을 사용한 도자기 ‘백자운룡문호’, 김규진이 그림을 그리고 수를 놓은 12폭 ‘자수매화병풍’ 등이 나와 있다.

‘예술로서의 회화, 예술가로서의 화가’ 섹션에서는 과거 기능적 장인에 가까웠던 화원 화가가 예술가적 성격의 화가로 변모하는 양상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고종 어진(御眞·임금 초상화)을 남긴 화가 채용신이 근대 화단에 풍속화의 새로운 전형을 제시한 작품 ‘벌목도’와 최익현 선생이 숭례문에서 일본 대마도(쓰시마섬)에 도착하는 과정을 비단에 그린 ‘유배도’, 김규진의 ‘묵죽도’ 등이 걸렸다.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조선시대의 우수한 미술 전통이 대한제국 시기에 이르러 급격히 쇠퇴한 것으로 인식돼왔다”며 “최근 공과가 모두 반영된 균형 잡힌 대한제국의 역사가 서술되면서 미술 역시 과거의 전통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한편 외부의 새로운 요소들을 받아들임으로써 근대미술로의 변화를 모색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종영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굳은 심지로 근대 국가를 세우려던 고종을 연기한 배우 이승준이 전시회의 특별 홍보대사를 맡았다. 관람객에게 깊은 감동과 여운을 전할 이승준의 가이드 투어는 국립현대미술관 모바일앱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전시는 내년 2월6일까지. 관람료 3000원.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