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학 카페
소비자에 가격을 높게 제안해
해당 물건·조건의 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하는 효과
일단 가격을 높게 제시하면 양보할 수 있는 여지도 커져
제대로 협상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논리와 근거가 필요
협상을 하는 목적은 협상 전보다 좀 더 나은 조건을 얻는 것이다. 더 나은 조건으로 합의하려면 어떤 사람은 세게 치는 것이 좋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세게 쳐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미국 미시간대 경영대학원에서는 캠퍼스 내 학생 800명을 대상으로 400명씩 두 그룹으로 나눠 실험을 했다. 똑같은 물건을 파는데 A그룹에는 첫 제안을 700달러 이상으로, B그룹에는 700달러 이하로 했더니 재미있는 결과가 나왔다. A그룹의 합의 금액은 평균 625달러였고 B그룹은 평균 425달러였다. 같은 물건을 단지 제안 가격만 달리했을 뿐인데 가격 차이는 평균 200달러였다.
이 실험으로 알 수 있듯이 제안 가격이 높으면 합의금액도 높게 나오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인간 심리에 작용하는 ‘닻 내림 효과’ 때문이다. 배에서 닻을 내리면 배가 멀리 가지 못하고 주변에 머물게 된다. 협상에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발생한다. 어느 선이 공평한지 또는 적절한 가격인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누군가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하게 되면 제시된 숫자나 조건으로부터 협상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알게 모르게 그 지점이 심리적 기준선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 같은 심리를 이용하면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다.
백화점 명품업체 매장에 가면 다들 높은 가격에 혀를 내두른다. 명품의류나 핸드백, 또는 시계 등 고가품은 별도의 쇼케이스에 두고 비싼 가격표를 붙여 놓고 있다. 그들의 속셈은 따로 있다. 그 제품보다 가격이 낮은 제품을 팔기 위한 목적이다. 제일 비싼 제품을 보고 나서 다른 제품을 볼 때 상대적으로 싸게 보이게 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이것이 닻 내림 효과다. 소비자의 인식에 닻을 내리는 것이다. 고가품을 보고 난 다음에 소비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웬만한 높은 가격에는 익숙해져 버리기 때문이다.
‘크게 목표하기(aim high)’의 장점은 몇 가지가 있다. 첫째, 가격을 높게 제안함으로써 해당 물건이나 조건의 가치에 대해 상대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마트 매장에 가보면 진열된 두부 종류는 여러 가지다.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싼 두부가 있고 비싼 두부가 있다. 포장지에 나타난 성분에도 특별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잘 모르겠지만 가격이 비싼 이유가 있겠지’라고 추측하게 될 것이다. 이런 점을 노리는 것이다.
둘째, 일단 가격을 높이면 상대에게 양보할 수 있는 여지가 커진다. 높은 가격을 제안했던 만큼 양보의 폭 또한 커질 수 있다. 당신이 제안하고 난 다음 상대가 선뜻 받아주리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제안을 받은 상대 또한 일단 “아니오”라고 하는 게 정상이다. 당연히 가격 협상이 뒤따르게 된다. 이때 양보해줄 여지가 많은 경우와 적은 경우가 있다면 어느 쪽이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는지는 물어보지 않아도 뻔하다. 그러니 비싸도 좋다. 허용된 범위 내에서 최상을 불러라. 높은 목표를 설정하면 높은 금액으로 합의할 수 있다. 요구하지 않으면 얻지 못하는 것이 협상이다.
하지만 무조건 크게 목표를 잡으면 안 된다. 제대로 협상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논리와 근거가 필요하다. 아무 근거 없이 제안하는 것은 한번 툭 던져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아니면 말고 식이다. 상대를 슬쩍 테스트해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근거 없는 제안 방식은 협상에서 신뢰를 잃을 수 있다. 따라서 당신이 주장한 제안을 정당화할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숫자나 가격을 제안하는 것보다 그럴듯한 이유를 댈 때 당신의 제안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크다. 가격 제안 후 ‘왜냐하면’이라고 설명을 붙이면 강한 심리적 효과를 낳는다. 그것은 상대가 수긍할 수 없는 이유일지라도 없는 것보다 훨씬 낫다.
이태석 < IGM(세계경영연구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