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퍼주기 복지' 개혁 중
(2) 남미 잔혹사에서 배운다
아르헨티나, 만성 적자…2000년 이후 IMF 구제금융만 두번째
베네수엘라, 100만% 살인적인 인플레…230만명 고국 등져
한번 도입한 복지 되돌리기 힘들다
아르헨, 1950년대 페론정권 이후
식량·주택 '퍼주기'…곳간 텅비어
'수술' 나서자 긴축반대 시위 빗발
포퓰리즘에 '석유의 저주' 겹쳐
고유가때 도입한 선심성 정책 역풍
부족한 재정 메우려 돈 찍어내
국가 통제 벗어난 '하이퍼인플레'
[ 이현일 기자 ]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는 연금 등 복지 개혁에 실패한 국가의 비참한 미래를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이들 국가의 경제난은 경제 제재나 유가 하락과 같은 외부 요인이 겹치면서 회복 불능 상태에 빠졌다. 국가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과도했던 사회보장비 지출이 한번 불붙으면 진화가 불가능한 장작더미로 작용한 결과다.
◆포퓰리즘 망령에 짓눌린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는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과의 싸움에서 줄곧 패하면서 외환위기가 반복되고 있다. 2001년에 이어 지난 5월 또 한 번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극심한 사회 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정부 대책은 제대로 먹히지 않고 있다. TN방송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중앙은행이 환율 안정을 위해 기준금리를 연 60%까지 올리면서 개인 신용카드 할부 금리는 연 100%까지 올랐다. 페소화 환율은 연초 달러당 18페소에서 이달 37페소가량으로 두 배 넘게 뛰었다. 식품업체들은 수입 원료값을 감당 못하고 조업을 중단했다. 생필품 수급을 걱정하는 중산층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범죄도 급증하고 있다. 지난달 초 아르헨티나 북부 차코주에선 13세 소년이 상점에서 식품을 훔치려다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하기도 했다. 스마트폰을 노린 강·절도 범죄가 잇따르면서 길거리에서 통화하지 말라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아르헨티나 포퓰리즘의 역사는 70년이 넘는다. 1940~1950년대 후안 도밍고 페론 대통령과 부인 에바 페론이 정권을 잡은 뒤 노동자와 서민을 위한다며 식량·주택·교육 등에서 보조금을 퍼주는 정책을 도입한 게 시초다. 그 결과 정부는 수십 년간 재정적자에 시달렸고 매년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서 외환위기가 되풀이됐다.
2015년 당선된 마우리시오 마크리 대통령은 경제 파탄을 막기 위해 개혁을 시도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다시 외환위기를 맞자 마크리 정부는 지난달 콩, 옥수수, 밀 등 곡물 수출금액 1달러당 4페소의 세금을 부과하고 정부 부처를 절반으로 줄여 공무원을 대폭 감축하겠다고 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5~6%에 이르는 재정적자를 줄이는 게 우선이라는 판단에서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마요 광장에선 연일 정부의 긴축에 반대하는 노동조합과 시민단체들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노동조합들은 지난달 25일까지 네 차례에 걸쳐 총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운수 노조는 지난 8일 임금 재협상을 요구하면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다음주 파업을 하겠다고 예고했다.
◆나라를 등지는 베네수엘라 국민
남미 최대 산유국인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르화는 종잇조각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볼리바르화 지폐를 활용한 공예품이 성행할 정도다. IMF 등은 올해 베네수엘라의 물가상승률이 100만%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국민은 굶주림 탓에 작년 한 해 몸무게가 평균 11㎏ 줄어들었다는 조사도 나왔다.
극도의 생활고로 최근 3년간 베네수엘라 국민 3200만 명 중 약 230만 명이 나라를 등졌다. 전쟁이 난 것도 아닌데 국민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등 이웃 나라로 떠나는 것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탓이다.
베네수엘라의 위기는 유가 하락과 미국의 경제 제재가 겹친 영향이 크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과 그의 정치적 후계자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실정(失政) 때문이다. 총수출의 90%를 원유·가스에 의존한 취약한 경제구조를 바꿔나가기는커녕 과거 고유가 시절엔 온갖 선심성 정책을 앞다퉈 도입했다.
주간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차베스 집권 2년차인 2000년 외환보유액은 7개월치의 해외 수입액과 비슷했다. 하지만 차베스가 무상 의료와 교육을 시행하고 주택 및 에너지 지원, 식품 보조금 등에 마구 돈을 뿌리자 해외 수입이 급증했다. 그 결과 2013년엔 외환보유액이 3개월치 수입액 수준으로 급감했다.
때마침 유가 하락으로 세수도 감소했다. 그러자 베네수엘라 정부는 부족한 재정을 메우기 위해 돈을 마구 찍어내기까지 했다. 베네수엘라가 하이퍼인플레이션(물가가 통제를 벗어나 수백% 이상 상승)의 늪에 빠진 배경이다.
포퓰리즘 정책에 몰두해온 마두로 대통령은 최근 화폐단위를 10만 분의 1로 축소하는 화폐개혁에 나섰지만 상황을 바꾸기엔 역부족인 모습이다. 그는 지난 5월 조기 대선을 통해 재선에 성공하면서 임기가 6년 더 연장됐다. 해외 투자자들은 베네수엘라의 미래를 우려하고 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