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남북관계 개선 앞서 '시정'해야 할 것 분명히 해야

입력 2018-10-11 18:09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5·24 조치 해제 검토’ 발언 후폭풍이 거세다. 통일부는 어제 “해제를 검토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미국은 5·24 조치 해제뿐만 아니라 남북한 경제·군사적 합의들에 대해서도 대놓고 문제 제기를 했다. 이미 미국은 개성공단 재가동, 남북연락사무소 개소 등에 대해 제동을 건 적이 있는 터다. 대북 제재를 두고 한·미 간 엇박자가 심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주목되는 것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발언이다. 강 장관의 언급에 대해 “그들(한국)은 우리의 ‘승인(approval)’ 없이 아무 일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두 차례나 강조했다. 주권 침해 소지까지 있는 ‘승인’ 표현을 쓴 것은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정부는 “모든 것을 한·미 간 협의 속에서 진행하겠다는 뜻”이라고 했지만, 발언 배경에 대해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남북한 철도 연결 연내 착공과 남북한 군사 분야 합의에 강한 불만을 표시한 것도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과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는 정부의 말을 무색케 한다.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은 남북한 관계의 진전과 비핵화의 진전은 보조를 맞춰야 한다는 미국의 기존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굳이 미국의 제동이 아니더라도 이참에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남북한 관계 개선에 앞서 시정해야 할 것을 건너뛰고 넘어가선 안 된다는 점이다. ‘5·24 조치’는 2010년 북한의 천안함 공격으로 우리 장병 46명이 목숨을 잃은 뒤 정부가 취한 제재였다. 해제를 검토하려면 북한의 사과를 받아내고, 유족의 이해를 구하는 게 선행돼야 한다. 금강산 관광 재개도 우리 관광객 피격에 대한 북한의 사과가 최소한의 조건이 돼야 함은 물론이다. 정부가 개성공단 가동 중단 조치를 한 것은 북한의 잇단 핵·미사일 위협 때문이었지만, 원인 해소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북한은 그간 수 많은 도발을 일으키고도 사죄 한 번 하지 않았다. 우리가 아무런 시정조치 없이 넘어간다면 북한을 더 오만하게 할 뿐이다.

국제사회가 북한을 강력하게 제재하는 것은 핵 때문이다. 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다른 문제도 풀릴 수 없다. 대한민국을 겨냥한 북한 핵 위협은 조금도 줄지 않았는데 우리만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니다. 북핵이 있는 한 남북한 관계 개선이 평화를 담보해주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