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휘의 한반도는 지금)[북방 접경지대를 가다]④단둥에 부는 북중경협 바람

입력 2018-10-02 11:28
수정 2018-10-02 11:28


(박동휘 정치부 기자) 압록강의 황톳물은 들고 나기를 반복했다. 오전 썰물 때를 만난 강(江)은 바닥을 훤희 드러냈다. 하류쪽에선 걸어서도 갈 수 있을 듯 했다. 자연은 수백년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움직이고 있지만, 강이 가로지른 두 도시의 모습은 단 수십년의 세월 만에 너무도 달라져 버렸다. 단둥과 신의주 얘기다.

관광지로 변한 압록강단교 위에 서면 신의주의 모습이 오롯이 잡힌다. 시끌벅적, 휘황찬란한 단둥과 달리 신의주 일대는 쥐죽은 듯이 조용하다. 그나마 김정은 체제로 접어들면서 외관이 바뀌었다. 대관람차도 등장했고, 호텔처럼 보이는 큰 건물도 강변 한켠을 차지했다.

북한쪽 압록강변엔 둑이 없다. 잘 정비된 단둥의 강변도로와는 대조적이다. 수많은 자동차들이 오가는 도로는 든든한 석축 위에 깔렸는데, 왠만한 강의 범람도 범접하지 못할 정도의 높이다. 밀물과 썰물을 가진 압록강은 여름이면 큰 물을 만들어 신의주 일대를 침수시킨다. 몇해 전에도 시커먼 토사가 북한 제2의 도시를 삼켰다. 그때마다 중국은 돈으로 그들의 억울함을 달래준다.

중국과 북한의 관계는 돈으로 연결돼 있었다. 달러와 유로가 통용되던 시절에서 지금은 ‘런먼비’가 통용화폐다. 현지 무역상들은 대략 2년 여 전부터 인민폐 현찰 거래가 단둥에서 이뤄지는 북·중 거래의 주요 수단이 됐다고 말했다. 달러에 비해 인민폐로 거래하면 불편한 게 이만저만이 아니다. 화폐단위가 작아서 현금으로 거래할 때 돈다발이 무거워질 수 밖에 없다.

단둥 세관은 북한으로 가려는 중국인 관광객들로 매일 인산인해다. 평일인데도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들어가면서 북한과 중국을 오가는 무역상들은 차편을 구하는데 애를 먹을 정도다. 묘향산여행이라는 승합차도 보였다. ‘사사버스들’도 철교를 부지런히 오간다. 북한에 거주하는 이들이 중국을 오갈 때 이용하는 교통수단이다.

평양, 원산, 금강산, 묘향산 등을 가기 위해 단둥에 모인 중국인들은 월경 전에 류경식당에 들르기도 한다. ‘하오하오’를 외치는 그들은 구성지게 뽑아내는 ‘접대동무’로 불리는 북한 여성들의 중국 노랫자락에 흥이 겨워보였다. 10여 명으로 구성된 듯 보이는 그들은 음식을 나르기도 하고, 12시 반 무렵엔 가수로 변신했다. 춤과 악기연주까지 가능한 그들은 팔방미인이다.

요즘 단둥의 무역상들은 기대에 부풀어 있다. 북·중 무역이 재개될 수 있다는 희망이다. 2014년까지만해도 북·중 무역액은 65억달러에 달했고, 그 중 70%가 단둥에서 이뤄졌다. 하지만 지난해 무역규모는 50억달러 밑으로 떨어졌다. 북한과 중국 단둥의 최대 교역물은 수산물이다. 공식적으로는 거래 불가다. 하지만 북한에 괜찮은 대상(對商)을 잡고 있는 무역상들은 얼마든지 거래를 한다. 제재 속에서 오히려 수지가 더 맞는다는 이들도 꽤 많다.

반신반의하는 이들도 꽤 있다. 북한의 막무가내식 상술은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도 당혹스럽게 만든다. 중국 500대 그룹 중 하나인 서양그룹은 평양측과 양봉합영회사를 만들어 최고인민의회상임위원회 명의로 30년 계약을 체결했지만 끝내 사기를 당했다. 총매장량이 17억t에 달하는 옹진광산 개발권을 획득한 것이었는데 2077~2011년에 한화로 400억원을 투자했지만 2011년 9월 북측의 일방적인 계약 파기로 투자금을 몽땅 날렸다.

단둥은 북·중 관계의 미래를 보여 줄 ‘가늠자 도시’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감시망이 가장 널리 퍼져있는 곳이 단둥시다. 그러기에 중국 정부는 북·중 밀무역이 주로 이뤄지는 호산장성 일대 압록강변에 철조망을 쳤다. 겉으로는 밀무역을 봉쇄하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중국은 단둥과 신의주를 잇는 신압록강대교를 조만간 개통할 태세다. 고속철까지 중국돈으로 놓겠다고 평양을 설득 중이다.

한반도 평화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남북경협에 대한 논란도 한창이다. 과속이란 지적과 함께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이 논의 속에서 간과된 게 한가지 있다. 북한과의 경제협력이 한국과 주로 이뤄질 것이란 기대는 환상이라는 점에서다. 한반도 평화가 진전될수록 북·중 협력이 더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끝) / donghuip@hankyung.com 후원:한국언론진흥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