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북한 돈줄' 고삐 죄며 새 협상판 짜기 시동
中·러 등 北 노동자 고용 42개국
239개 합작기업 명단 공개하며
거래금지 권고·처벌 등 강력 경고
해상거래 주의보 이어 올 두 번째
美 국무부 "신규 제재 아니다"
압박 계속하며 대화기조는 유지
[ 박수진 기자 ]
미국이 비핵화 협상에 미온적인 북한을 압박하기 위한 ‘돈줄 죄기’에 나섰다. 미국이 새로운 협상판을 짜기 위해 행동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北 노동자 고용 국가 42곳 공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23일(현지시간) 국무부와 재무부, 국토안보부 등 3개 부처 합동으로 ‘대북 제재 주의보’를 전격 발령했다. 미국은 주의보를 통해 북한 노동자 파견이 이뤄진 중국 러시아 싱가포르 알제리 등 42개국을 밝히고 거래를 피해야 할 북한 관련 239개 합작기업 명단도 공개했다. 대북 제재를 위반한 개인과 기관은 미국 정부의 처벌을 받는다는 점도 명시했다. 북한 비핵화 등을 위한 6·12 미·북 정상회담 합의 내용 이행을 압박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미 국무부는 이날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 국토안보부 산하 세관국경보호국(CBP), 이민세관단속국(ICE)과 함께 17쪽 분량의 ‘북한 제재 및 단속 조치 주의보’를 발표했다. 유엔 제재를 위반하는 북한의 무역 및 노동 수출 관련 행위를 사례별로 소개하고 관련국들에 주의를 당부했다. 미 국무부가 대북 제재 관련 주의보를 발령한 것은 지난 2월 선박 간 환적 행위 등 북한의 해상 거래에 대한 주의보를 발령한 데 이어 올 들어 두 번째다.
미국은 이번 대북 제재 주의보를 통해 제3국에서 이뤄지는 북한의 불법무역 행태를 상세히 밝혔다. 북한이 제3국 업체의 하도급을 받아 물품을 생산해 수출하고 있는데, 이 사실을 통보받지 못한 바이어 또는 주문자도 제재 위반 리스트에 오를 수 있다고 미 정부는 설명했다. 미국은 북한 기업이 중국 업체로부터 하도급을 받아 의류용 자수를 생산하는 것을 대표적인 불법무역 사례로 꼽았다.
미 정부는 원산지 둔갑도 불법무역의 한 유형으로 분류했다. 북한산 수산물이 제3국으로 넘어가 재가공 단계를 거치며 북한산이라는 흔적을 지우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 또 북한이 시세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상품이나 원자재를 내다 팔고 있다며 2014~2017년 중국에 수출된 무연탄을 구체적인 예로 제시했다.
◆제재 대상 北기업 239곳도 공개
미국은 그러면서 농업·애니메이션·제지·정보기술(IT)·부동산·섬유·소형가전 등 37개 분야에 걸친 북한의 합작기업 239개 명단을 별첨 문서에 공개하고 이들 기업과 거래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이름이 공개된 북한 합작회사는 ‘나선태화회사’ ‘청송회사’ ‘평매합작회사’ 등이다. 외국 파트너와 합작한 북한 기업이 수백 개에 달하는 만큼 거래 시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이 명단이 제재 리스트는 아니다”면서도 “일부 기업은 제재 대상에 이미 올랐으며 일부는 제재 대상 지정 기준에 부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2017~2018년 현재 북한은 알제리와 키르기스스탄, 콩고 등 42개국에 노동력을 파견하고 있다고 밝혔다. 쿠웨이트와 말레이시아 등 17개국은 건설 현장에서, 앙골라와 방글라데시 등 7개국은 IT 분야에서, 네팔과 나이지리아 등 8개국은 의료 분야에서 북한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 국무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밝혔듯이 대북 제재는 계속될 것”이라며 “국제사회는 북한이 비핵화할 때까지 압박을 늦출 수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새로운 대북 제재가 부과된 건 아니다”고 밝혔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