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北 정상회담
민주당 상원 지도부, 트럼프에 서한 보내
"완전한 핵폐기 前 대북제재 완화하면 안돼
생화학무기도 해체…별도 감시체제 필요"
전문가 "합의문 먼저 내고 검증 미룰 가능성"
[ 워싱턴=박수진 기자 ]
미·북 정상회담을 엿새 앞두고 미국 정가와 언론에서 ‘로키(low-key·낮은 수준)’ 비핵화 합의에 대한 경계론이 커지고 있다. 민주당은 4일(현지시간) “완전한 비핵화를 이루기 전에 대북한 제재 완화는 안되며 핵뿐만 아니라 생화학무기도 해체시켜야 한다”고 요구하고 나섰다. 백악관이 당초 주장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에서 한발 물러서 북한과 주고받기식 협상 쪽으로 가려 한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합의 불이행 땐 제재복원 가능해야”
척 슈머 원내대표를 비롯한 민주당의 상원 지도부는 이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 폐기와 검증이 완전하게 이뤄지기 전에 대북 제재를 해제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대북 제재 유지와 함께 △핵·생화학무기 해체 △군사적 목적의 우라늄·플루토늄 생산 및 농축 중단 △핵 실험장과 연구·농축 시설 등 핵무기 인프라 영구 해체 △탄도미사일 시험 전면 중단 및 해체를 요구했다.
비핵화 검증과 사찰 문제를 거론하며 “북한이 비핵화를 준수하고 있는지를 실시간 확인할 수 있도록 모든 핵시설에 대한 완전한 접근이 가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북한의 부정행위를 차단하고 탐지할 수 있는 별도의 감시 체제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당초 백악관에서 주장한 ‘PVID(영구적 비핵화)’ 수준의 비핵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슈머 원내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은 단지 합의하겠다는 이유로 나쁜 합의를 받아들여선 안 된다”며 “북한이 비핵화 이행을 완전하게 준수하지 않을 때는 언제 어디서나 사찰과 ‘스냅백(제재 복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공화당 원내사령탑을 맡고 있는 미치 매코널 상원의원도 지난 1일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과 사랑에 빠지지 말고 세세한 부분을 잘 살펴야 한다”고 주문했다.
◆CVID 언급 안하는 백악관
의회의 ‘로키 비핵화’에 대한 경계론은 최근 백악관에서 나온 비핵화 협상 관련 발언과 연관돼 있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미·북 정상회담 시간을 12일 오전 10시(한국시간 기준)라고 발표하면서 “협상은 비핵화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완전한 비핵화’나 ‘CVID’가 아니라 ‘비핵화’라고만 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 1일 백악관에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과 면담한 뒤 협상목표를 언급하면서 ‘CVID’를 얘기하지 않았다. 대신 종전선언 가능성과 대북제재 동결, 단계적 협상론을 거론했다.
그러자 미국에선 느슨한 비핵화 협상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미국 일간 USA투데이는 미·북 정상회담에 대해 “이번에는 만나고, 합의는 나중에 하는 식이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CNN도 “북한과 미국이 비핵화와 체제 안전보장 등 핵심 의제를 놓고 기본 틀만 합의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북한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언제까지 어떻게 포기하고, 미국이 반대로 무엇을 제공할지는 추후 논의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존 케이식 오하이오주지사는 지난 3일 CBS 방송에 출연해 “어떤 합의든 홍보쇼가 돼서는 안된다”며 “그들(북한)에 대한 검증 가능한 결과를 얻을 때까지 압박을 완화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패트릭 크로닌 미국신안보센터(CNAS) 아시아태평양 안보소장은 “디테일의 악마가 따르는 광범위한 합의를 예상한다”고 했다. 가장 쉬운 회담 합의문만 먼저 내고 어려운 검증 문제는 뒤로 넘길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의전·의제 실무협상 막바지
미·북은 정상회담 시간뿐만 아니라 장소, 의제에서도 거의 합의에 다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백악관은 “(의제 관련) 판문점 회담이 매우 긍정적이고, 중요한 진전을 이뤄왔다”고 평가했다. 의제 관련 실무협상은 협상 직전까지 계속될 것으로 알려졌다.
정상회담 기간이 13일까지 하루 연장되고, 남·북·미 정상회의가 열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회담 장소는 샹그릴라호텔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오는 10일부터 14일까지 샹그릴라호텔 주변 지역과 센토사섬 일대를 ‘특별행사구역’으로 지정한다고 발표했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