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보다 주목받는 고려대 경영대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입력 2018-05-29 19:16
'스타트업스테이션' 돌풍

출범 1년 반 만에
33개 입주社 몸값 224억

민간기업 십시일반 출연
정부규제 없어 창의성 발휘

'고질병' 학과 칸막이 사라져
타 대학 학생까지 팀 합류


[ 이수빈/임락근 기자 ]
지난 11일 오후 서울 안암동 고려대 경영대 LG포스코관 4층 수펙스홀. 수용 인원 200명 안팎인 이곳에 300여 명의 인파가 몰렸다. 고려대 경영대 스타트업스테이션에 입주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7곳의 기업설명회를 보기 위해서였다. 자리가 부족해 통로에 앉거나 서서 보는 이도 많았다. 이날 참석자 중에는 SK텔레콤 롯데 네이버 카카오 등 대기업과 스파크랩스 디캠프 등 국내외 대표 액셀러레이터(스타트업 지원 육성 전문기업) 관계자도 60여 명 있었다.

공대 아닌 경영대 스타트업

2016년 출범한 이곳은 1년6개월여 만에 33개 법인이 총 224억원의 가치평가를 받았다. 기업을 거의 배출하지 못하고 있는 다른 대학 창업센터와 비교된다. 이곳의 입주팀 중 40%가량이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로 연결되고 있다. 최근 업계에서 창업 성공 사례로 주목받은 재능공유 플랫폼 ‘탈잉’, 스마트워치용 호텔 관리 솔루션을 개발한 ‘두닷두’도 스타트업스테이션 출신이다. 이공계열 학생의 기술 스타트업 위주인 대학 창업에서 문과 계열인 경영대가 스타트업 성과를 낸 것은 드문 사례다.

스타트업스테이션이 타 대학 창업센터와 다른 점은 민간기금으로 출발했다는 데 있다. 경영학과 동문인 이상일 일진그룹 회장, 승명호 동화그룹 회장이 각각 20억원과 15억원을 기부하면서 기금이 모였다. 이후 동문 지원이 늘어 기금은 100억원 이상으로 커졌다. 부당지원 등 비리를 막기 위해 규제가 까다로운 정부 지원금에 비해 민간 지원금은 창업팀을 자유롭게 도울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창업지원센터장을 맡은 신호정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와 같은 과 김희천, 유시진 교수가 각각 창업연구원장, 에듀케이션센터장을 맡아 스타트업스테이션을 출범시켰다.

지원금 규제에서 자유로워지자 학내 창업센터의 고질적 문제로 지목됐던 학과·학교 간 칸막이가 사라졌다. 팀원 중 고려대 경영대생이 한 명만 있어도 센터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된 것. 자연스레 학과·학교 간 시너지가 났다. 신 교수는 “고려대 경영대 학생이 기획해 연세대 공대 학생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홍익대 미대 학생이 디자인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탈잉이 대표적인 사례다. 팀원 중엔 고려대생뿐 아니라 경북대, 이화여대 학생도 있다.

미국 투자가도 자금 지원

평균 1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스타트업은 이곳에서 팀별 최대 500만원의 운영비용과 사무 공간을 제공받는다. 경영대 교수진에게 네트워킹과 홍보, 마케팅 서비스와 관련된 상담도 할 수 있다. 세무, 법률 등 지원이 필요할 땐 고려대 경영대가 제휴를 맺은 김앤장법률사무소, 삼일회계법인이 도와준다. 김봉진 배달의민족 대표 등 선배 창업가들의 특강도 열린다.

성공 사례 역시 꾸준히 나오고 있다. 촬영 부탁 카메라 앱(응용프로그램) ‘소브스(SOVS)’는 애플 앱스토어에 출시한 뒤 1주일 만에 ‘구닥’을 제치고 다운로드 인기 순위 1위에 올랐다. 다른 사람이 자기 사진을 찍어줄 때 마음에 안 들어하는 이용자가 많다는 데 착안해 실루엣으로 구도와 피사체 위치를 알려주도록 개발한 앱이다. 실패한 게임을 컨설팅해 재출시하는 ‘솔깃’은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 이용자 2만 명을 확보한 뒤 작년엔 미국에도 진출했다. 연간 1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페이스북메신저 등에 이모티콘을 제공하는 스티팝은 지난달 미국 액셀러레이터인 스파크랩스에서 투자를 받았다.

스타트업스테이션은 아이디어가 있는 팀을 잘 키워서 액셀러레이터에 연결해주는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기 위해 출범했다. 대학 내 창업센터에서 실제 기업이 탄생하는 사례는 드물다. 스타트업이 창업해 투자를 받고 기업가치가 10억달러 이상인 ‘유니콘’이 되려면 인큐베이터부터 여러 단계의 액셀러레이터를 거쳐야 한다. 제대로 된 기업 모습을 갖춘 스타트업에 투자하려는 액셀러레이터는 국내에 많지만, 아이디어 단계인 팀을 스타트업으로 키워주는 인큐베이터는 많지 않다는 게 스타트업스테이션 측 설명이다.

이수빈/임락근 기자 ls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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