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막말 중독증'에 빠진 정치권

입력 2018-05-14 17:40
박종필 정치부 기자 jp@hankyung.com


[ 박종필 기자 ] 여야가 또다시 막말 중독증에 빠졌다. 공회전만 거듭하는 국회 상황에 대한 책임 전가를 비롯해 6·13 지방선거에서 이슈를 선점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는 점에서 국회를 바라보는 눈이 곱지 않다.

발단은 지난 주말 지방선거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한 각 당의 필승 결의대회였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12일 “민생을 볼모로 잡아 텐트 치고 그늘에 앉아 일부러 밥 안 먹고, 일 안 하는 자유한국당은 빨간 옷을 입은 청개구리”라며 “깜도 안 되는 특검을 들어줬더니…”라고 했다.

한국당도 지지 않고 응수했다. 홍준표 대표는 같은 날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해 “(민주당 주장대로) 드루킹(댓글조작 주범)이 파리라면 드루킹 도움을 받아 대통령이 된 사람은 왕파리냐”고 꼬집었다. 장제원 대변인은 추 대표를 향해 “무내공 무존재감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추한 입’으로 청와대에 눈도장을 찍겠다는 것”이라고 거들었다.

양당의 감정 싸움은 말로 끝나지 않았다. 한국당 의원들이 14일 국회 로텐더홀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본회의장 정문으로 진입하는 길을 가로막은 것이다. 한국당 소속 의원실 보좌진과 당직자까지 수백 명이 농성에 가담했다.

드루킹 사건 수사를 위한 특검법 통과가 전제되지 않고, 지방선거 출마 의원 사직의 건만 처리하는 본회의 개의는 불가능하다는 한국당의 기존 입장은 더 강경해졌다. 여야가 이날 국회 정상화에 합의했지만, 서로 과격한 언행을 자제했다면 파행을 더 일찍 끝낼 수도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민주당 원내대표 교체시기여서 협상의 어려움이 있었다는 변명이 나온다. 하지만 지난 주말을 기점으로 깊어진 여야 대립의 골이 ‘막장국회’를 재연했다는 게 정확한 분석이다. 국회 관계자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지층을 의식해 센 발언을 내놓을수록 협상에서 운신의 폭이 좁아진다”고 지적했다.

2009년 조 윌슨 미국 공화당 하원의원은 의료보험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연설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향해 “거짓말쟁이”라고 외쳤다가 곤욕을 치렀다. 오늘의 대한민국 국회에서 이 정도 발언은 ‘애교’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자조 섞인 발언에 고개가 끄덕여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