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업 경영에 정권 교체가 '최대 리스크' 되는 나라

입력 2018-04-18 17:42
‘적폐 청산’을 외치는 정권이기에 조금은 다를 줄 알았다. 기대는 빗나가고 있다. 공공기관의 잇따른 인사 교체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는 게 아닌지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이제는 그런 의구심이 민간기업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중도 사임 의사를 밝힌 데 이어, 황창규 KT 회장은 정치 후원금 문제로 사퇴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권 회장은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청와대는 “민간기업 인사에 일절 관여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정권 압박 외에 다른 이유를 찾기 어렵다”는 시각이 많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이 네 차례 해외방문에 나서는 동안 포스코 회장이 경제사절단 명단에서 번번이 제외되는 등 심리적 압박감이 컸을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포스코와 KT는 과거 공기업이었지만 지금은 정부가 주식을 단 한 주도 보유하고 있지 않은 민간기업이다. 그런데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회장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중도에 사퇴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런 것이야말로 적폐 중의 적폐 아닌가.

하나금융그룹 회장 연임 등 금융권 인사와 관련한 정부와 금융사 간 갈등도 볼썽사납기는 마찬가지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등이 “연임은 금융개혁을 막는다”며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내는가 하면, 채용비리를 빌미로 금융사에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하는 양상이다. 앞으로 국민연금이 도입을 결정한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 지침)까지 현실화되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내 주요 기업들이 일제히 CEO 교체 소동에 휘말리지 말란 법도 없다.

정권교체 리스크는 인사에 그치지 않는다. 기업은 정권이 요구하는 지배구조를 강요받고, 경영권 위협에 노출되고, 배당 확대로 내몰리기도 한다. 원가·원료·영업비밀 공개 위협에 시달리고, 노동정책 압박에 발을 맞춰야 하는 것도 기업의 몫이다. “어쩔 수 없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정권교체로 기업경영이 이렇게 불확실성에 휩싸이는 건 정상이 아니다. 이래서는 경제가 살아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