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축 대동맥' 서울광명고속도로
정부-지자체 갈등에 첫 삽도 못 떠
12일 오후 1시 찾은 서울 강서구 방화터널 올림픽대로 방면 입구. 도로 옆 아파트 벽에 ‘서울~광명 고속도로 방화터널 통과 결사반대’라고 적힌 30m 길이의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길 건너 단지에도 고속도로 사업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지역 주민 이모씨(56)는 “왕복 6차선 도로에 고속도로 4차선이 들어서면 교통 체증과 매연, 소음이 늘어난다”며 “주민들 의견 무시한 졸속 사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광명~서울 민자고속도로’ 사업이 착공을 앞두고 거센 주민 반발에 부딪쳤다. 도로가 지나는 지역 주민들이 고속도로 지하화 또는 우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경기 광명·부천시, 서울 구로·강서구 등 지방자치단체 4곳이 반발하고 있어 의견차를 좁히기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지자체 지하화·우회 요구
서울~광명 고속도로는 경기 광명시 가학동과 방화대교 남단 사이 20.2㎞를 잇는 왕복 4~6차로다. 사업비는 1조6069억원이다. 호남 내륙에서 충청을 거쳐 경기북부를 관통하는 ‘익산~문산 고속도로(261㎞)’의 일부로 설계됐다. 국토의 서부축을 연결하는 대동맥인 셈이다. 국토교통부는 통일 후 개성 평양과도 연결할 계획이다.
익산~문산 고속도로가 원활하게 운영되기 위해선 이 구간 개통이 필요하다. 평택∼수원∼광명 구간은 이미 개통을 마쳤다. 2015년 착공한 서울∼문산 구간은 2020년 완공 예정이다. 다섯 구간의 중심에 있는 광명∼서울 구간만 개통이 늦어지고 있다.
지난 2003년 사업 제안이 이뤄진 이 사업은 15년이나 지난 2월에서야 겨우 실시계획을 승인받았다. 곧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지만 주민 반발이 심해 가뜩이나 늦어진 사업이 더 늦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주민들은 집 옆을 지나는 고속도로를 혐오시설이라고 보고 있다. 소음 매연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은 데다 주변 교통 체증도 심해질 우려가 있어서다. 따라서 요구도 간단하다. 지하화하거나 노선을 바꾸라고 압박하고 있다.
강서구 주민들은 고속도로가 방화터널이 아니라 시 외곽이나 한강하저터널로 우회하게 해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방화터널 앞 편도 3차선 도로 중 2개로가 고속도로로 사용되면 교통 체증이 심해질 거란 이유에서다. 매연과 소음도 문제다. 박흥종 고속도로건설반대 강서대책위원장은 “편도 3차선 중 1차선만 이용하라는 건 이 도로를 쓰지 말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마곡지구 위가 아닌 한강하저터널을 지나도록 공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천시는 동부천·강서 나들목(IC)을 이전하고 통과하는 지역(6.4㎞) 전부를 지하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도로가 통과하는 까치울 전원마을이 소음과 분진으로 뒤덮일 것이란 우려에서다. 하루 3만대가 지나다닐 것으로 예상되는 톨게이트가 인근 초등학교 앞에 들어서는 점도 문제로 지적한다. 한원상 고속도로건설반대 부천대책위원장은 “주민 산책로가 있는 작동산이 훼손되는 데다 정수장도 오염될 수 있어 고속도로 지하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국토부에서 주민 의견을 무시한 채 사업을 강행한다면 ‘제2의 밀양 송전탑 사건’이 재연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광명시는 통과 구간(6.6㎞) 중 원광명 마을 2㎞ 구간의 지하화 여부를 놓고 주민 간 의견이 갈렸다. 옥길동 일대 주민은 지하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원광명 마을 일부 주민은 지상 도로를 선호하고 있다. 원광명지구 도시개발사업 조합추진위원회 관계자는 “지상 도로 위에 휴게소와 톨게이트가 생기면 지역 경기가 나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구로구는 지하노선을 우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속도로 위에 항동택지개발 사업이 진행되고 있어서다. 1만6786㎡ 부지에 올해까지 5221가구 주택과 유치원?학교가 들어설 예정이다. 인근 주민은 “지하고속도를 건설하려면 입주 이전에 했어야 했다”며 “집이 다 들어선 상태에서 공사하면 주민들은 소음과 진동에 시달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 4곳 지자체는 결국 지난달 30일 단체 행동에 들어갔다. 승인고시 철회와 사업 재검토를 촉구하는 공동건의문을 국토부에 전달했다. 이들 4곳 지자체는 “불합리한 노선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채 사업을 추진해 유감”이라며 “잘못된 도시기반시설 건설에 따른 주민 피해는 돌이킬 수 없는 만큼 사업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소통 부재가 낳은 갈등
정부와 지자체의 갈등은 2012년 시작됐다. 사업시행자를 지정하는 실시협약 체결 뒤 일부 주민이 노선 변경과 지하화를 국토부에 요구하면서다. 2013~2014년 국민권익위원회 주관으로 민원 해결을 위한 대책회의도 3차례 열었지만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서울지방국토관리청 민자도로과 관계자는 “오랫동안 지자체와 협의를 해온 데다 교통?환경영향평가에서도 문제가 없어 서울시가 승인을 마친 상태”라며 “국토의 남북을 연결하는 노선으로 이용할 수 있어 효용성이 높은 만큼 사업을 조속히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토교통부 도로투자지원과 관계자는 “의견 차이를 보이는 구간에 대해 해당 지자체와 협의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며 “다만 실시계획 승인이 난 사업이라 사업계획을 변경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전했다.
주민 반발로 사업이 지연된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2016년 8월 서울 서부간선도로 지하화 공사가 일시 중단됐다. 환풍구 2곳의 위치를 놓고 갈등이 빚어져서다. 환풍구 주변 135~240m 거리엔 아파트와 학교가 밀집해 있다. 당시 구로구 주민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사업 철회를 요구했다. 결국 시행처인 서울시는 그해 12월 “환기구 설치 없이 사업을 진행하겠다”며 물러섰다. 공사는 4개월 만에 재개됐다.
전문가들은 “소통 부재가 문제 원인”이라고 입을 모았다. 사업 초기 단계부터 정부와 주민 간 소통이 충분치 않았다는 설명이다. 사업 절차가 복잡한 민자 사업의 특성도 한계로 지적된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민자사업은 사업의 적격성 조사, 사업자 선정, 협상 등을 거친 뒤에 주민 의견이 수렴되는 구조라 착공때 주민 반발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다”며 “공기(工期) 지연으로 사업비가 늘어나는 데다 갈등에서 오는 사회적 비용도 큰 만큼 사업 초기부터 의사소통을 차근차근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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