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연 포스텍 총장 "기업 끌어와 지역경제 살리는 대학, 모범답안 보여줄 것"

입력 2018-03-13 17:52
대학 혁신 '용감한 실험' 나선 김도연 포스텍 총장

'無학과 제도' 국내 최초 도입
선택 못받은 학과 존폐 위기
학생들 손에 성공여부 달려

시장경제 맞게 등록금 자율화
대학도 투명한 재정운영해야

기업·지자체·대학 '삼위일체'
'새 먹거리' 창출 힘 모아야


[ 박동휘 기자 ]
포스텍(포항공대)은 개교 이래 가장 혁신적인 ‘실험’을 올해부터 시작했다. 약 300명의 신입생 전원을 전공 없이 단일 계열로 선발했다. 2015년 9월 취임 후 2년 반 동안 포스텍을 이끌고 있는 김도연 총장(67·사진)이 벼르던 일이다.

국내 대학 최초의 ‘무(無)학과’ 실험이 가져올 변화는 예상조차 쉽지 않다. 1년 반 뒤 전공 선택의 시간이 다가왔을 때 어떤 학과는 신청자 미달로 존폐 위기에 몰릴 수도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대학의 살 길로 일컬어지는 학문 간 칸막이의 붕괴가 포스텍에서부터 시작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김 총장은 “결과는 순전히 학생 손에 달렸다”고 했다.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냈고, 울산대에 이어 두 번째로 총장직을 맡고 있는 그의 시선은 ‘미래’로 가 있다. 시쳇말로 산전수전 다 겪은 김 총장이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 내린 결론은 대학 경쟁력의 복원이다. 대학이 사회를 위한 가치 창출을 제대로 해야 “도시가 살고, 국가가 산다”는 것이다. 김 총장의 개혁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무학과 제도가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요?

“글쎄요. 가늠하기 어려워요. 학과별 정원이라는 개념을 없앤 겁니다. 한 과에 모든 학생이 몰리는 극단적인 상황이 올 수도 있겠죠. 거꾸로 선택받지 못한 학과는 없어질 테고요. 단일 계열로 뽑은 학생들은 내년 9월 전공 선택 기회가 주어지는데 원하면 전공을 고르지 않아도 됩니다. 어쩌면 앞으로 1~2년간 무리한 일들이 생길지도 모르죠. 그래도 이걸 견뎌내야 합니다.”

▷왜 이런 시도를 하는 건가요.

“학문 간 칸막이를 없애자는 말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게 쉽지만은 않아요. 대학이 혁명을 할 수 있는 곳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개혁의 주체를 학생으로 바꿔보자고 생각한 겁니다. 자연스러운 변화를 만들겠다는 것이죠. 실험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 해외 대학과 비교해보면 그렇게 무리한 것도 아니에요. 미국 등 주요 대학에선 이미 다 하고 있는 일이거든요.”

▷요즘 대학이 여러모로 어렵습니다.

“재정 문제가 심각하죠. 대학이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고 있어요. 얼마 전에 일본 와세다대의 재생을 다룬 책을 읽었습니다.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한때 파산을 선언한 대학이 어떻게 다시 사립 명문으로 부활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에요. 거기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돈으로부터의 독립 없이는 학문 독립도 없다.’ 등록금을 동결하지 않으면 정부 재정사업에 응모조차 못하게 하는 한국 현실과 비교하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등록금을 올리는 게 능사는 아닐 것 같은데요.

“모든 대학이 마구잡이로 올리는 건 안 될 일이죠. 시장경제 논리에 맞게 자율화하자는 겁니다. 대학도 반성할 게 많습니다. 투명하고 체계적인 재정운용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ERP(전사적자원관리)시스템을 구축한 대학이 몇 군데 안 돼요. 한국 대학처럼 재무구조가 복잡한 기관도 없을 겁니다. 연구비가 어떻게 들어와서 나가는지 총장도 제대로 몰라요. 재정 누수부터 잡아야 대학도 말할 자격이 생기는 겁니다.”

▷대학이 너무 많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대학을 무작정 퇴출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에요. 비리 사학이야 어쩔 수 없지만 대학이라는 게 지방 도시를 지탱해 주는 뿌리나 마찬가집니다. 학생을 소수로 줄이고, 특성화를 북돋아서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책《유니버+시티》를 출간했는데요.

“2년 전에 울산에 갔다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10여 년 전 울산대 총장 시절에 본 울산과 너무 다른 거예요. 밤이면 정말 반짝반짝하던 도시는 온데간데없더라고요. 이거 진짜 큰일이다 싶었죠. 누군가는 뭐라도 해야 할 텐데, 그나마 움직일 수 있는 건 대학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학과 도시의 결합이란 화두에 공감한 16개 국립대 총장과 각 지방자치단체장 글을 모아 낸 책입니다.”

▷반향이 제법 있을 것 같습니다.

“화두부터 던지자는 생각에 만든 거니까 아직 초보적이에요. 앞으로 할 일이 더 많습니다. KAIST와 공동으로 연구작업을 시작했으니까 조만간 더 알찬 결과가 나올 겁니다. 결과물은 중소벤처기업부에 전달할 예정이고요. 우리가 자발적으로 연구성과를 공유하겠다고 했더니 처음엔 중기부에서 당황하더라고요. 대학에서 연락이 오면 늘 뭔가 해달라는 요청이겠거니 해서 한동안 메일을 열어보지도 않았다더군요.”

▷포항은 사정이 나은 편이죠?

“그렇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어찌 될지는 아무도 몰라요. 철강, 조선 같은 대형 제조업을 우리가 영원히 지켜낼 수 있을까요? 외국에서 뺏어온 산업을 우리만 뺏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순진한 거죠. 설령 지켜낸다고 해도 이대로만 있으면 제자리걸음이에요. 무언가를 더 쌓아올려야 합니다.새로운 걸 더 만들어야 하는데 이건 지역의 대학이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게 많은 분들의 생각이에요.”

▷포스텍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요.

“오픈이노베이션센터라는 새로운 공간을 교내에 마련할 겁니다. 바이오·제약에 특화된 센터를 우선 짓고 있고, 미래 도시를 주제로 한 나머지 센터도 조만간 착공할 계획이에요. 바이오센터엔 포스코, 제넥신 등 주춧돌 역할을 해 줄 핵심 기업이 이미 입주를 약속했습니다. 이 센터가 중요한 건 대학뿐만 아니라 경상북도, 포항시 등 지자체도 예산을 넣어 함께한다는 점이에요.”

▷새로운 모델을 만드는 셈이네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기업, 대학, 지자체 모두 각자 잘살았어요. 과거 같았으면 포스텍 같은 여유 있는 대학에 지자체가 돈을 대는 건 상상도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변했어요. 서로 힘을 합치지 않으면 도시가 죽습니다. 포스텍이 제대로 된 모범 답안을 한번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포항=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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