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주도 개헌 실패 가능성 높다" 서울대 교수들 쓴소리

입력 2018-03-12 16:38
수정 2018-03-12 17:31
서울대 행정대학원 주최 정책지식포럼서 쓴소리

대통령 주도 개헌 실패 가능성 높아…연임제 부작용 고려해야
6월 개헌 조급증 버리고 점진적 접근해야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통령 직속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자문특위)가 ‘대통령 4년 연임제’를 골자로 한 정부 개헌안 초안을 내놓은 데 대해 서울대에서 ‘신중론’이 제기됐다. 대통령이 직접 개헌을 주도하기보단 국회에 맡기고, 한 번에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조급증을 버려야 한다는 조언이다.

서울대 행정대학원은 12일 관악캠퍼스에서 ‘국정시스템 진단과 평가-대통령’이란 주제로 주례포럼인 정책지식포럼을 열었다. 한국정치학회 회장을 지낸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주제 발표를 한 뒤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정광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와 토론을 벌였다.

강 교수는 대통령 주도의 개헌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양극화된 한국 정치 지형 하에선 개헌의 취지가 아무리 좋더라도 불필요한 정치 논리가 개입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강 교수는 “현재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높지만 한국 사회는 세대 간, 계층 간 양극화가 심각한 상황”이라며 “(이같은 정치 환경에서)대통령이 개헌 문제를 만지면 본질은 사라지고 정파 싸움으로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교수들은 대통령 자문특위 개헌안의 핵심 안건으로 전해지는 정부형태(권력구조)개편으로서의 4년 연임제 및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권한 분배를 의미하는 이원집정부제 논의 역시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대통령의 연임 또는 권한 배분이 국정 운영의 연속성 부재, 그로 인한 장기정책의 실종이란 현 대통령제의 핵심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소시킬 순 없다는 이유에서다.

강 교수는 “8년 재임으로 사실상 3년 반 수준에 불과한 대통령의 실질적 통치기간을 다소 늘릴 순 있지만 재선용 포퓰리즘 정책의 폐해 역시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대안으로 제시되는 분권형 대통령제는 말로는 편하지만 자유무역협정(FTA)처럼 경제 외교 정치가 복잡하게 얽힌 국가적 이슈를 두고 현실적으론 갈등만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한 교수도 “재임을 위한 선거가 대통령의 일방적 정책 추진 억제할 수 있다는 것은 순진한 기대”라며 “특정 지역에 어필해야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양극화된 한국 정치 지형에선 연임제는 오히려 한 쪽만을 위한 정책만을 양산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이어 “오히려 대통령 재임 기간이 연장되면서 정권에 따라 승진이 좌우되는 관료 집단 심지어 언론까지도 단임제 시절보다 더 진영 논리에 충실한 행태를 보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교수들은 대통령을 비롯해 개헌을 추진 중인 여권이 ‘6월 개헌’에 대한 조급증을 버릴 것을 주문했다. ‘이번이 아니면 안된다’식의 개헌보단 여야 간 합의에 도달할 수 있는 부분부터 순차적으로 바꿔나가는 ‘점진적’ 개헌이 장기적으로 바람직하다는 얘기다. 정 교수는 “과거 한국 대통령들의 실패는 제도의 문제라기보단 개인의 문제가 더 크다”며 “표심을 잘 잡고 인기영합에 능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기 쉬운 현행 직선제 구조에서 연임제 개헌은 아직 충분한 공감대를 얻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강 교수도 “지방분권 개헌 역시 사실상 1당 독재가 수십년간 고착화된 현재의 지방정치 구조를 타파하지 않고선 오히려 부작용만 낳을 수 있다”며 “정치권이 바뀌는 게 문제라면 선거법, 정당법 개정이 더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현재 개헌에 대한 많은 이들의 인식은 ‘약간 불편한 게 있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다’는 것”이라며 “개헌 역시 한꺼번에 모든 것을 바꾸려 하지 말고 점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