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김정은 5월 만난다
트럼프, 김정은의 정상회담 제안 '깜짝 수용'
북한, 제재 완화와 북·미관계 정상화 원해
트럼프, 중간선거 승리 위해 '빅이벤트' 필요
미국, 대북창구 미비…북한에 끌려갈 수도
[ 워싱턴=박수진 기자 ]
한반도 정세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합의 사흘 만에 북·미 정상회담까지 ‘사실상’ 결정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간 회담은 큰 ‘기회’이자 ‘리스크’다. 잘되면 한반도에 유례없는 평화가 가능하지만 실패하면 돌이킬 수 없는 대결 국면으로 치닫게 될 가능성이 크다.
뉴욕타임스는 “대담하고 드라마틱한 결단을 좋아하는 두 지도자의 만남은 한반도 상황을 어디로 튀게 할지 모른다”고 보도했다.
“결정권자끼리 만나야 문제 해결”
김 위원장의 ‘파격적인’ 회담 제안과 트럼프 대통령의 ‘파격적인’ 수락은 모두 워싱턴 외교가와 정가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당초 미국 언론과 외교 소식통들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억류 미국인의 석방카드나 핵 또는 미사일 관련 양보 제안 등을 전달할 것으로 추측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정 실장에게서 북·미 정상회담 제안을 구두로 전달받고 즉석에서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 외교가는 파격 행보의 배경을 세 가지로 보고 있다. 우선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미 정상회담만큼 좋은 카드가 없다는 판단이다. 익명을 요구한 미 정부 고위관계자는 “김정은은 그 독재사회에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며 “비핵화 문제를 풀기 위해 그를 만나는 것은 사리에 맞다”고 말했다.
더구나 김 위원장은 비핵화를 대화 주제로 삼고, 대화 기간에 핵·미사일 도발도 중단하겠다고 약속했다. 그가 적절한 조건을 만들어준 이상 트럼프 대통령이 거절할 명분도 없는 셈이다.
CNN 등 미 언론은 백악관 내·외부의 어수선한 상황도 배경으로 꼽았다. 올 들어 백악관에서는 롭 포터 선임비서관, 호프 힉스 공보국장, 게리 콘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등 주요 인사가 밀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러시아 스캔들 특검 조사도 백악관 수뇌부를 정조준해 치고 들어오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알려진 포르노 스타와의 스캔들은 오는 11월 의회 중간선거에서 반드시 이겨야 할 트럼프 대통령의 발목을 잡고 있다. 북·미 정상회담만큼 확실한 국면 전환 카드가 없다는 평가다.
韓美, 비핵화·제재유지 원칙 공조
두 지도자 간 기(氣)싸움도 전격적인 북·미 정상회담 수락의 배경이 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은의 대담한 제안에 트럼프 대통령 역시 머뭇거리지 않고 흔쾌히 수용함으로써 회담 전부터 밀리지 않는 모습을 연출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주목되는 것은 이후다. 트럼프 대통령과 정 실장은 각각 트위터와 브리핑에서 ‘비핵화’와 ‘최대 압박 유지’를 강조했다. 백악관 관계자는 “트럼프 행정부가 과거 정부와 가장 차별화되는 점은 과거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대화의 대가로 경제적 지원을 하고, 제재를 완화해 핵무기 개발의 공간을 허용했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기조에서 ‘대화는 하되 비핵화 때까지 최대 압박과 제재는 유지한다’는 기조가 적용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그동안 최대 압박과 제재에만 집중하다 보니 대화와 개입에는 준비가 덜 돼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헤더 노어트 미 국무부 대변인이 지난 7일 “(남북 정상회담 등 개입정책을 본격 논해야 하는) 이런 날이 올지 예상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은 대로다.
대화 주도 北 vs 준비 덜 된 美
미국의 대북창구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사 자리가 조셉 윤 전 대사의 사의로 공석이 됐고, 한국 정부와의 대북정책 조율을 최전방에서 맡아야 할 주한 미 대사직도 1년 넘게 비었다. 실질적으로 한반도 정책을 주도하는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는 상원 인준을 받지 못해 여전히 대행 딱지 신세다.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남북대화를 제안하고 평창동계올림픽에 대표단을 보내는 등 전략적이고 치밀하게 평화공세를 펴왔던 것과 대조된다. 워싱턴 외교 소식통은 “방북특사단 면담부터 회담 제안 수용, 브리핑 제안까지 모두 트럼프 대통령의 즉석 결정으로 이뤄진 일”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일이 잘 풀리면 다행이지만 꼬이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 위험도 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