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분수령 맞은 대미 통상외교, '국익 최우선'으로 고민해야

입력 2018-03-01 18:27
숨 쉴 틈 없이 통상 공세를 벌이던 미국이 모처럼 공격 수위를 낮췄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무역·통상 5대 정책을 발표하면서 “한·미FTA 개선작업을 지속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얼마 전까지 ‘재앙’이라며 폐기 가능성까지 언급한 것에 비춰 보면 상당히 누그러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산 세탁기와 태양광 패널에 대해 “삼성 LG 같은 기업들이 미국 내 생산에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한국산 철강과 알루미늄은 “쿼터와 관세 등 몇 가지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공격 대상이었던 품목에 대해 구체적 요구사항을 제시하며 한국이 따를 경우 한·미 FTA도 굳이 폐기까지는 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강공’에 나섰다가 요구 조건을 내밀며 유화 제스처를 취하는 특유의 협상 전략을 보여준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또 다른 통상전략 구상을 다듬고 있음도 드러나고 있다. 강경 보호무역파인 피터 나바로 전 국가무역위원장을 무역정책보좌관으로 재기용하겠다고 밝힌 것이나,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을 통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복귀 의사를 거듭 표명한 것이 그렇다. TPP에 가입하지 않은 한국 중국 등에는 반가울 수 없는 소식이다.

“당당하고 결연하게 대응한다”는 원칙 아래 미국을 WTO에 제소까지 한 한국은 모호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 공세를 늦춘 상황에서 ‘미국의 부당함’을 더 따지고 들기가 곤란해졌다. 미국의 주된 무역보복 대상인 중국이 미국산 닭고기 관세를 8년 만에 폐지하는 등 ‘미국 달래기’에 나선 터여서 더욱 그렇다. 한국의 대미 통상 외교가 중대 분수령을 맞고 있다.

통상 외교의 최우선 목표는 ‘국익’이어야 한다. 여기서 국익은 경제적 이득뿐 아니라 한·미 관계 전반을 아우르는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백악관이 밝힌 무역·통상 5대 정책 중 첫 번째는 ‘경제적 안보 확립을 통한 국가안보 뒷받침’이다. 안보와 경제가 분리될 수 없음을 강조한 것이다. 한국의 대미 통상 외교 역시 여기서 길을 찾아야 한다. 안보와 통상 문제는 결코 분리해 대응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