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병석의 이슈프리즘] 노사정 대화, 대통령이 나서야

입력 2018-02-22 18:34
차병석 편집국 부국장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우려되는 건 북핵 위기만이 아니다. 난마처럼 얽힌 노동 이슈도 걱정거리다.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 하나하나가 풀기 어려운 문제다. 이슈마다 노(勞)와 사(使)가 첨예하게 맞붙어 있다. 그럼에도 이 난제들을 풀지 않고는 사상 최악의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지난달 말 양대 노총이 모두 참석해 열린 노사정(勞使政) 대표자회의가 주목받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8년2개월 만에 노동 현안의 이해당사자들이 머리를 맞댄 만큼 뭔가 타협안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나온다. 그러나 노사정 회의에 참석한 여섯 명의 대표자 면면만 보면 대타협이 결코 쉽지 않아 보이는 구조다.

노사정 회의는 타협 힘든 구조

경영자 측인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박병원 경총 회장과 노동계 측인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사이에서 거중조정을 해야 할 정부 측 대표가 모두 노동계 출신이다. 문성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장은 민주노총 금속연맹 위원을 지냈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전국금융산업노조 부위원장을 맡았었다. 외형상 회의체가 노동계에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이런 불균형 구조에서 합리적 타협안이 나오길 기대하긴 힘들다. 이번 노사정 회의의 성패가 노동계의 기득권 양보를 얼마나 끌어내느냐에 달려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노동계 입장에선 양보할 이유도 없다. 최저임금 1만원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이미 정부가 약속한 선물을 받아 놓았는데, 그걸 환불해줄 리가 없다. 설령 노측 대표가 대타협을 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합의안은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중앙집행위원회나 대의원회의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게 노동계 관행이다. 노총 위원장의 잠재적 경쟁자인 중집위원과 대의원들이 합의안에 선뜻 동의해줄 가능성은 작다. 1998년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타협 직후 민주노총 지도부가 불신임당하고, 2015년 노사정 대화 때 합의가 번번이 번복됐던 게 이 때문이다.

노사정 대화에 희망이 없다면 노동개혁을 통한 청년실업 해소는 요원할까. 방법이 없지는 않다. 독일의 하르츠 개혁 사례가 힌트가 될 수 있다. 2000년대 초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정도로 망가진 독일 경제를 되살린 하르츠 개혁은 당시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의 확고한 리더십 덕분에 가능했다. 슈뢰더 총리는 독일 경제의 경쟁력 회복을 위해선 단기간 근로 및 파견근로 규제 완화 등 노동유연성을 높이는 게 필수라는 확신을 갖고 노동계에 고통 분담을 호소했다.

사회민주당 출신인 슈뢰더 총리는 자신의 지지기반인 노동계와의 결별을 감수하면서까지 하르츠 개혁을 관철시켰다. 이후 독일 기업들은 투자를 늘렸고, 일자리도 증가했다. 수출경쟁력이 회복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독일 경제는 끄떡하지 않았다. 노동계의 지지 철회로 그는 다음 총선에서 정권을 잃었지만 독일 경제를 살린 위대한 지도자로 역사는 기억하고 있다.

대통령 의지와 리더십이 관건

우리도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 노사정 대화를 거부하던 양대 노총 지도부를 청와대로 초청해 설득했듯이 말이다. 한국 경제의 미래를 좌우할 청년실업을 해소하려면 결국 기존 취업자를 대표하는 노조의 임금과 일자리 양보가 필수적이다. 그래야 사회안전망 대폭 확충과 같은 타협안이 나올 수 있다. 이런 대타협이야말로 국정 최고책임자의 결연한 의지와 리더십이 발휘될 때 이뤄질 수 있다.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