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 함께 책 속으로] "외롭지도, 상처받지도 않으려면 타인과의 적정한 거리 찾으세요"

입력 2018-02-08 18:57
'당신과 나 사이' 펴낸 김혜남 정신분석 전문의


[ 심성미 기자 ]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심리학이 서른 살에게 답하다》 등 심리분야 베스트셀러를 쓴 김혜남 작가(59)는 마흔 살 전까지 승승장구하는 정신분석 전문의였다. 평안하던 인생에 굴곡이 지기 시작한 건 2001년 파킨슨병 진단을 받은 후였다. 병세가 악화돼 병원 문을 닫자 그의 곁에 있던 지인들은 온데간데없었다. 새벽이면 찾아오는 극심한 고통에 몸부림치며 그가 깨달은 건 외로움이었다. “이 고통은 누구에게도 나눠줄 수 없는 내 몫이고, 인간은 결국 혼자 살아가는 것이구나.” 하지만 모순되게도 18년간 투병 생활 동안의 가장 큰 기쁨은 그의 손을 잡아주려고 기꺼이 시간을 내 찾아오는 친구들이었다.

김 작가는 8일 “서로 기대어 살 수밖에 없는 게 인생이라면 누군가에게 어깨를 내어주는 법과 함께 잘 기대는 법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신간 《당신과 나 사이》를 출간한 이유를 설명했다. 한 시간 집필하면 두 시간은 자야 하는 체력 때문에 책을 완성하는 데 꼬박 3년이 걸렸다. 책의 부제는 ‘너무 멀어서 외롭지 않고 너무 가까워서 상처 입지 않는 거리를 찾는 법’이다.

“사람들은 흔히 사랑하는 사람과 하나가 되기 원하지만 동시에 자기 영역을 침범받는 걸 경계합니다. 둘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을 때 비로소 좋은 관계가 유지될 수 있어요.”

그가 강조하는 ‘심리적 거리’란 타인을 무조건 멀리하라는 뜻은 아니다. “상대방이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존중해 주라는 말”이다.

그는 책에서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거리를 두는 법을 조언한다. 우선 가족이나 연인과 나 사이에 필요한 거리를 ‘0~46㎝’로 규정했다. 가족이나 연인은 가장 큰 기쁨을 주는 동시에 때로는 극복하지 못할 상처를 주는 존재다.

그는 “상대에 대한 사랑이 클수록 그를 나만의 틀 안에 가두려는 욕심 탓에 관계가 멀어진다”며 “상대를 내가 바라는 방식대로 바꾸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인정할 때 비로소 건강한 관계가 가능해진다”고 강조했다.

그를 찾아오는 환자 중엔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이들이 많다. 비슷한 주제로 강의를 나갈 때면 ‘단군신화’ 그림을 보여준다.

“상처를 준 부모들은 그들의 부모에게 받은 상처를 대물림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럼 우리는 단군 할아버지에게 달려가 따져야 할까요? 아이에게 상처를 준 부모도 30~40대의 아직 미숙한 어른이었을 겁니다. 그들을 ‘내가 원하는 부모’로 바꾸는 건 불가능하다고 인정한 뒤 본인은 본인 나름대로 갈 길을 가면 되는 거예요.”

그는 “인간을 가장 행복하게 해 주는 관계는 사랑이 아니라 우정”이라고 했다. 우정이야말로 바깥 세상과 나를 연결시켜주는 고리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동이 잦아진 현대 사회에서는 평생 가는 친구보다는 ‘고등학교 친구’ ‘대학교 친구’처럼 인생의 한 시점을 공유하는 친구가 더 많아졌다”며 “연락이 끊기기 쉬운 환경 속에서 친구를 대할 때 명심할 것은 ‘진정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더불어 친구 사이에서도 심리적 거리(46㎝~1.2m)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을 친구에게 요구하지 말고, 단점과 잘못을 눈감아줄 수 있는 존중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이 가장 스트레스받는 관계는 가족, 친구보다 직장에서 비롯된다. 김 작가는 “‘직장 친구’ 대신 ‘직장 동료’라는 말이 있는 이유를 생각해보라”며 “직장 동료와 친밀한 관계를 맺는 건 대개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가 제시한 직장 동료와의 거리는 1.2~3.6m. 그는 “직장에서 만난 관계에서는 시기심이나 우월감, 열등감, 경계심 등 부정적인 심리적 요소가 끼어들 여지가 많은 만큼 상처받을 확률이 높은 관계”라고 설명했다.

“타인과 거리를 두라는 건 모든 관계를 원만하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무례한 사람들의 부당한 비난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동시에 소중한 사람들과 보다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죠. 미움받지 않으려 들이는 시간과 에너지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과 일에 쏟는 것이 현명한 일일 테니까요.”(메이븐, 316쪽, 1만5000원)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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