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동서의 속담

입력 2018-02-08 18:27
장병우 < 현대엘리베이터 사장 bobjang1@naver.com >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 본성은 한결같기에 어느 나라 속담이든 읽어보면 즉시 마음에 와닿는다. 일상생활에서 속담과 격언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다면 대화는 한층 간결해지고 활력이 생기며 기지와 해학이 넘치게 된다.

속담은 보편적인 진리로서 호소력이 있을 뿐 아니라 수사적 표현이 풍부하고 재치 있는 비유가 많다. 널리 애송되는 일행시(一行詩)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속담은 가장 짧은 형태의 문학작품이다.

우리 속담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올라간다’는 영국 속담 ‘요리사가 너무 많으면 수프를 망친다(Too many cooks spoil the broth)’와 뜻이 같다. 이는 미국 속담 ‘추장이 너무 많고 부하 인디언이 너무 적다(Too many chiefs and not enough Indians)’와도 비슷하다. 또 ‘산에 가야 호랑이를 잡는다’는 우리 속담은 ‘달걀을 깨지 않고는 오믈렛을 못 만든다(You can’t make an omelet without breaking eggs)’는 미국 속담과 뜻이 통한다. 이들 속담에서 눈에 띄는 것은 그 안에 스며 있는 문화다. 수프, 인디언, 오믈렛 같은 낱말에서 서양 문화가 드러난다.

‘호돌이’가 서울올림픽, ‘수호랑’이 평창동계올림픽 마스코트가 됐을 만큼 호랑이는 우리 문화와 인연이 깊다. 우리 속담은 토속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것이 대다수인데, 이를 외국어로 직역하면 외국인은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례가 많을 것이다.

다행히도 동·서 간 혹은 국가 간 문화 장벽이 높지 않아 금방 이해할 수 있는 속담이 훨씬 많다. 예컨대 우리 속담 ‘호랑이가 없는 곳에선 토끼가 왕이다’가 라틴어 속담에서는 ‘장님 나라에서는 애꾸눈이 왕이다’가 된다. 우리의 ‘글 못 쓰는 사람 붓 타령한다’가 영국에서는 ‘서툰 목수가 연장 탓한다’로 바뀐다. 또 하나의 예로 ‘로마에 있을 땐 로마인처럼 행동하라’라는 영어 속담에 해당하는 러시아 속담이 있는데, 그것은 ‘이리떼와 같이 살 때는 이리처럼 포효하라’다. 이런 속담은 문화 차이를 넘어 어디서든 금방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국정취가 있어서 흥미롭다.

그러나 ‘수염이 석 자라도 먹어야 양반’ ‘얌전한 강아지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 등은 해당하는 서양 속담을 외국 속담사전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 속담이 외국 속담보다 더 다양한 것 같아 우리 정신문화 유산에 대해 긍지를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