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이상한 '로봇국가' 이야기

입력 2018-02-01 18:05
수정 2018-02-04 10:13
"현실 모르는 책상머리 설계자들
일자리 막는 '친노동 정책의 역설'
노동규제로 로봇 일자리 만들어"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박사


“노동시장을 단순하게 본 측면이 있다.”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은 한국공학한림원 신년포럼에서 최저임금 파동 질문이 나오자 이렇게 답했다. 청와대 일자리 상황판에 적신호가 들어온 모양이다. 주요 연구기관들이 일제히 올해 한국 고용시장은 잿빛이 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투자 부진 때문이라지만 진짜 이유는 쉬쉬하는 것 같다. 문재인 정부가 다른 경제정책과의 조화를 무시한 채, 노동계 요구대로 공약을 마구 시행하면서 빚어지고 있는 ‘노동정책 실패’ 말이다.

모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결국 일자리 총량 감소를 낳게 된다는 게 노동전문가들의 고백이다. 비정규직이 정규직화 말고도 로봇화, 오프쇼어링(해외 이전), 아웃소싱 등 대체될 경로가 많다는 이유에서다. 여기에 근로시간 단축은 인간이 아니라 로봇 일거리 창출로 이어진다는 최근 연구뿐만 아니라, 경제 전반에 ‘과부하’를 초래하고 있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소동으로 인해 고용 감소를 피하지 못할 것이란 분석도 더해진다. 일자리 정부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헷갈린다.

‘한국판 소득주도 성장론’이 나온 배경은 그럴듯하다. 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가 줄고 자본이 과잉인 상태에서 노동 생산성을 높이고, 인적자본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그 수단이 왜 ‘친(親)노동정책’이란 이름으로 급격한 임금 인상, 노동 규제, 경제민주화 등이어야 하는지 명확한 인과관계를 알 수가 없다.

한국 제조업은 이미 산업용 로봇 사용률에서 세계 1등을 달리고 있다. 2015년 기준 미국 일본 독일 영국 네덜란드 등 주요국의 총투자율(총고정자본/GDP), 고용률 등과 비교하면 한국은 총투자율은 매우 높고 고용률은 낮은 특이한 국가다. 과거의 경로를 회상해 보면 이것이 경제정책이나 자본 탓이라고만 하기 어렵다.

한국 경제는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 노동쟁의가 빈발하는 가운데, 1인당 인건비가 급등하면서 제조업 매출 대비 인건비 비중이 이례적으로 높아진 때가 있었다. 이 기간 생산 자동화 등 자본장비율이 급등했다. 여기에 중국의 노동집약적 산업 잠식까지 더해지면서 제조업에서 퇴출된 인력의 자영업 진입이 많아졌다. 이후 노동계는 소득분배 악화 문제를 부각시켰지만 실은 노사불안이 자초한 측면이 있다.

비슷한 상황이 또 반복되지 말란 법이 없다. 문재인 정부 소득주도 성장론은 소득분배율을 높이기 위해 규제를 동원해서라도 일단 임금을 끌어올려 놓고 보자고 한다. 그들 주장대로 자본 값이 싼 자본과잉 상태에서 임금을 급격히 인상한다면 노동절약적 로봇화는 더욱 가속화할 게 뻔하다.

로봇화라고 다 같은 로봇화가 아니다. 선진국의 로봇화는 고용 창출을 동반하는 ‘혁신형’으로 가고 있다. 김주훈 한국개발연구원 수석이코노미스트가 분석한 주요국 고용률 추이에 따르면 독일은 2005년 65.5%에서 2015년 74.0%로 급등했다. 독일 고용률 증가 배경에는 주목할 부분이 있다. 높은 소프트웨어(SW) 인력 수요다. 로봇 등 신산업을 위한 지식과 혁신 투자가 새로운 인적자본 수요를 낳고 있다. 이런 분야는 청년 취업 증가율도 높다.

반면 한국의 고용률은 2005년 63.7%에서 2015년 65.7%로 60%대에서 맴돌고 있다. ‘노동규제 회피형’, ‘비용 절감형’ 로봇화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고용이 빠진 로봇화인 셈이다. 한국과 독일에서 똑같은 스마트팩토리를 해도 고용효과가 크게 다를 것이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나마 희망적인 부분이 있다면 한국에서도 2010년 이후 제조업, 신산업 등에서 기업이 SW 등을 중심으로 고용을 늘리고 있는 점이다. 자본과 노동 간 적대적 관계를 전제로 한 노동규제가 그 싹마저 자르지 않을지 걱정스럽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의 소득주도 성장론은 이상한 로봇국가를 재촉할 운명이다.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