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처음 출근하는 이에게

입력 2017-12-31 18:12
고두현 논설위원·시인 kdh@hankyung.com


새해 첫날 떠오르는 해는 찬란한 금빛이다. 수평선 위로 솟는 빛의 왕관(王冠), 빛 중에서도 가장 밝은 태양(太陽)의 애초 모습 같다. 해는 1년 내내 뜨고 지지만, 새해 아침에는 유난히 밝고 커 보인다. 새 봄의 씨앗을 잉태하는 생명, 첫 출근을 앞둔 청년의 말간 얼굴을 닮았다.

‘첫’이라는 말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무한 경쟁을 뚫고 취직 시험에 합격한 젊은이의 마음은 ‘날카로운 첫 키스’의 순간보다 더 떨리고 설렐 것이다. 그의 첫 출근길에는 희망과 불안이 교차하리라. 30여 년 전 내가 그랬듯이. 그를 위해 시 한 편을 선물하며 마음을 북돋워 주고 싶다. 어쩌면 나에게 주는 자경문(自警文)인지도 모른다.

‘잊지 말라./ 지금 네가 열고 들어온 문이/ 한때는 다 벽이었다는 걸.// 쉽게 열리는 문은/ 쉽게 닫히는 법./ 들어올 땐 좁지만/ 나갈 땐 넓은 거란다.// 집도 사람도 생각의 그릇만큼/ 넓어지고 깊어지느니/ 처음 문을 열 때의 그 떨림으로/ 늘 네 집의 창문을 넓혀라.// 그리고 창가에 앉아 바라보라./ 세상의 모든 집에 창문이 있는 것은/ 바깥 풍경을 내다보기보다/ 그 빛으로 자신을 비추기 위함이니// 생각이 막힐 때마다/ 창가에 앉아 고요히 사색하라./ 지혜와 영감은 창가에서 나온다.’(고두현 ‘처음 출근하는 이에게’ 중)

벽을 밀면 문이 된다. 들어올 때 좁더라도 나갈 땐 넓은 문. 집이나 사람이나 문이 넓어야 시야가 넓어진다. 지혜와 창의도 생각의 문을 통해 커지고 깊어진다. 청년은 세상의 ‘벽’을 ‘문’으로 바꾸고 ‘길’을 넓히는 주인공이다. 스스로 세상의 문이 되는 길도 거기에 있다.

‘어느 집에 불이 켜지는지/ 먼 하늘의 별이 어떻게 반짝이는지/ 그 빛이 내게로 와서/ 어떤 삶의 그림자를 만드는지// 시간이 날 때마다/ 그곳에 앉아 너를 돌아보라./ 그리고 세상의 창문이 되어라./ 창가에서는 누구나 시인이 된다.’

한때는 전문 지식 위주의 ‘I자형’ 인재가 각광받았다. 그 뒤로는 인접 분야에도 밝은 ‘T자형’, 지식과 경험을 축적한 ‘十자형’ 인재가 돋보였다. 앞으로는 상하좌우와 앞뒤, 근본을 아우르는 ‘입체형’ 인재 ‘지혜형’ 인간이 중요해질 것이다. 이에 필요한 조건은 ‘머리’와 ‘가슴’을 유연하게 연결하는 ‘창의’다. ‘창의’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창조’와 달리 유·무형의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힘의 원천이다.

그러니 처음 출근하는 이여. 지금부터 몸과 마음의 집에 창의의 문을 내고 틈날 때마다 영감을 떠올리자. 나와 우리, 나와 세상을 둘러싼 사유가 그곳에서 꽃 피고 열매를 맺을 것이다. 이 길을 먼저 걸은 선배들도 새해 아침에는 첫 출근 때 초심(初心)을 되새기며 구두끈을 새로 조인다.

고두현 논설위원·시인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