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수당·무상교복 등 경쟁적 선심정책 우려
사회보장 협의지침 개정
'부동의' 항목 아예 없애
중앙-지자체 의견 달라도
지속적으로 협의·보완
내년 지방선거 앞두고
포퓰리즘 정책 과열될 듯
[ 김일규 기자 ] 보건복지부가 내년에 각 지방자치단체가 마음껏 복지사업을 확대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줬다. 지자체가 복지부와 사전 협의 없이도 펼칠 수 있는 복지사업 항목을 대폭 늘렸다. 지자체가 협의를 요청한 사업에 대해 ‘부동의’할 수 있는 권한도 스스로 없앴다. 지자체의 자율과 권한을 보장하겠다는 취지이지만, 내년 지방선거에서 나올 ‘포퓰리즘 공약’이 그대로 정책으로 실행되는 것을 막을 장치를 없앴다는 점에서 논란이 될 전망이다.
◆청년수당 확대 불붙인 복지부
복지부는 29일 각 지자체에 배포한 ‘2018년 사회보장제도 신설·변경 협의 운용지침’에서 지자체가 복지부와 사전 협의 없이 시행할 수 있는 복지사업 항목을 크게 확대했다. 사회보장기본법은 지자체가 복지사업을 새로 벌이거나 변경할 경우 반드시 사전에 복지부 장관과 협의하도록 하고 있다. 중복 사업을 막고, 재정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기 위해서다. 복지부는 협의 결과 해당 사업에 동의하거나 반대할 수 있다.
새 지침은 △국가보상적 차원의 보훈사업 △일회성 주민참여예산 사업은 협의 대상에서 제외했다. 지자체가 복지부와 사전 협의 없이 이런 사업을 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다. 이미 협의된 복지사업 중 대상자 규모나 급여 수준만 변동되는 사업도 협의 대상에서 뺐다. 중앙부처 지침에 따라 지자체가 집행만 하는 사업도 협의 없이 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서울시가 벌이고 있는 무상 복지사업 ‘청년수당’은 지급 대상이나 지급 금액을 늘리고 싶으면 복지부와 협의 없이 마음대로 늘릴 수 있게 됐다. 서울시 청년수당은 만 19~29세 미취업 청년 가운데 중위 소득 150% 이하인 저소득층 5000명을 대상으로 매달 50만원씩 최대 6개월간 지급하는 사업이다.
복지부는 청년수당 사업에 2년 가까이 반대하며 소송까지 벌였지만, 올해 정권이 바뀌자 소를 취하하더니 이번엔 아예 청년수당을 더 확대할 수 있도록 해줬다는 점에서 논란이다.
여러 지자체가 올해 너도나도 청년수당을 지급하기 시작한 점을 감안하면 내년 지방선거에 나올 후보들이 청년수당이나 무상 교복 확대 공약을 경쟁적으로 내걸 가능성이 크다. 당선되면 복지부와 협의 없이 공약대로 시행하면 된다. 이에 따라 지자체 재정 건전성 문제가 불거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지자체 요구 다 들어주게 될 것”
복지부는 새 지침에서 지자체가 협의를 요청한 복지사업에 대한 결과 통보방식도 지자체에 유리하도록 바꿨다. 기존 지침은 지자체가 요청한 복지사업에 대해 복지부가 그대로 ‘동의’ 또는 ‘수정·보완’을 요구하거나 ‘부동의’까지 할 수 있도록 했다. 서울시 청년수당이 논란이 된 것도 복지부가 부동의했기 때문이다.
새 지침은 부동의 항목을 없애고 ‘협의 완료’ 또는 ‘재협의’를 하도록만 했다. 사실상 지자체 요구를 들어주겠다는 의미다. 복지부 관계자는 “중복 사업이나 다른 복지사업의 근간을 흔드는 사업이 아니라면 지속적으로 협의해 성립에 이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복지부가 지자체의 선심성 복지사업을 막을 길을 스스로 없앴다는 점에서 ‘제 발등을 찍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보건사회연구원 관계자는 “재정에 미치는 악영향을 줄이기 위한 사회보장사업 협의 제도를 무력화하는 지침”이라고 지적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