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타인을 구하겠다는 건 위선… 구원은 스스로만 가능하다

입력 2017-12-28 19:26
순수한 인생


[ 심성미 기자 ] ‘내가 바라보는 나’와 ‘타인이 바라보는 나’.

누구에게나 이 사이의 간극은 존재한다. 다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는 일은 불가능할뿐더러, 대부분 사람은 자신을 평가할 때보다 관대한 기준을 들이대기 마련이다.

미국 작가 데이나 스피오타의 장편소설 《순수한 인생》은 이런 간극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주인공 메도는 승승장구하는 여성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찍는 메도에게 다큐멘터리는 자신의 천재성을 과시하기 위한 장치다. 또 한 사람의 주인공은 젤리. 시력을 잃었다가 회복 중인 그는 할리우드 유명 인사들에게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대화하는 게 취미다.

화려함 속의 고독함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외로움을 예민하게 포착해 보듬어주는 메도에게 남자들은 금방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시력을 반쯤 잃은, 예쁘지도 날씬하지도 않은 젤리는 진짜 모습으로는 결코 받을 수 없을 것 같은 사랑을 받는다는 쾌감을 즐긴다.

문제는 이들의 삐뚤어진 자의식이 누군가에겐 지워지지 않는 상흔을 남긴다는 것이다. 메도는 젤리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내부의 교환원’을 찍는다. 현대인의 고독과 사랑에 대한 갈망을 적나라하게 담은 이 다큐는 호평을 얻지만 젤리는 메도에게 속아 자신의 보잘것 없는 일상이 모든 대중에게 까발려졌다는 생각에 수치심으로 몸서리친다. 그러나 젤리 역시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한 남자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가해자다.

작가가 집중하고 있는 또 하나의 주제는 ‘인간은 무엇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는가’다. 마약에 취해 집에 불을 질러 딸과 남편을 죽인 혐의로 종신형을 살고 있는 세라를 만난 것을 계기로 메도는 자신의 예술적 신념을 되돌아보게 된다. 사회적 약자들의 세계를 조명한다는 이유로 그들의 실제 삶을 얼마나 왜곡했는지, 동시에 ‘예술을 통해 그들을 구원하는 자’라며 얼마나 큰 위선을 떨었는지도.

종교가 없는 세라가 매일 아침 감옥에서 자신의 딸을 떠올리며 기도하는 장면. 세라는 자신과 같은 극빈층의 삶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 딸을 불길 속에 두고 나왔다. 그는 화염 속에서의 딸과의 마지막 순간을 매일 되새기며 비로소 일말의 위안을 느낀다. 작가는 세라의 독백을 통해 ‘구원’은 스스로만 가능한 것이라고 말한다.

작가는 인간의 죄의식과 자만감, 자기방어적 사고에 대해 정면으로 날카롭게 파고든다. 책장을 넘길수록 독자는 본인 안에 있는 자기기만적 사고에 대해 곱씹게 될 수밖에 없다. 다양한 소설적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도 새롭다. 전기적 에세이로 시작해 영화 각본, 인터넷 댓글 등의 형식을 자유롭게 이용했다. 그의 작품이 비로소 한국에 상륙한 것이 반갑다. (황가한 옮김, 은행나무, 352쪽, 1만4000원)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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