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공정위원장도 헷갈리는 로비 규정

입력 2017-12-28 18:23
수정 2018-03-19 11:11
임도원 경제부 기자 van7691@hankyung.com


[ 임도원 기자 ] “저는 ‘업무 관련성이 있는 모든 민간인 접촉을 보고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킬 것입니다.”(12월27일 밤)

“오해의 소지가 있어서 정정합니다. 저도 외부인 접촉관리 규정에 따른 보고 대상에 한해 보고하고자 합니다.”(28일 오전)

“정리해서 말씀드립니다. 모든 민간인과의 접촉을 보고하겠지만 이런 보고 대상에서 기자분들은 제외한다는 것입니다.”(28일 오후)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한국형 로비스트법’으로 불리는 ‘외부인 접촉 관리규정’의 본인 적용 문제에 대해 연이은 정정 메시지로 혼란을 일으켰다. 김 위원장은 28일 외부인 접촉 관리규정 제정을 앞두고 전날 밤 연락처에 있던 기업 관계자 등 지인들은 물론 출입기자단에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규정이 다음달 1일부터 시행되면 일반 공정위 직원들은 법무법인 변호사,대기업 임직원, 공정위 퇴직자 등 민간인에 한해 접촉 내용을 보고해야 하지만, 본인은 모든 민간인 접촉에 대해 보고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김 위원장은 “저와 접촉할 가능성이 있는 분들께 일괄 발송한 메시지”라며 “혹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기에 미리 양해를 구한다”고 적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혼란이 일었다. 당장 대기업 대관 담당자들은 공정위원장의 문자메시지를 직접 받고 대부분 화들짝 놀랐다.

공정위 출입기자단 역시 혼란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일상적인 취재활동에도 응하지 않겠다는 걸로 해석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결국 이날 오전 대변인실을 통해 “공정위원장도 일반 공정위 직원들과 같은 기준을 적용받겠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기자단에 보냈다. 하룻밤 새 입장을 바꾼 메시지에 또 한 번 혼란이 일 수밖에 없었다. 다시 문의가 빗발치자 김 위원장은 결국 이날 오후 “기자들만 보고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최종 입장을 전달했다.

외부인 접촉 관리규정은 정부 부처에서는 공정위가 처음으로 시행하는 제도다. “오히려 은밀한 청탁을 조장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많다. 공정위 수장조차 기준을 헷갈려 할 만큼 논란 있는 제도가 졸속으로 시행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될 따름이다.

임도원 경제부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