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제헌 70년] "저성장·양극화 늪에 빠진 한국… 돌파구는 '경제적 자유' 확대"

입력 2017-12-27 20:10
수정 2017-12-28 08:33
국내 대표 경제사학자·헌법학자 2인 인터뷰

이영훈 서울대 명예교수
국가개입 명문화한 헌법 9장
경제 조항 모두 삭제해야
재산권 보호가 자유의 핵심

김상겸 동국대 교수
자유가 공정보다 우선 가치
약자 배려한다며 국가 개입
시장경제 희생되면 의미없어


[ 유승호 기자 ] 신제도주의 경제학의 선구자로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더글러스 노스 미국 워싱턴대 교수는 왜 어떤 나라는 부유하고, 어떤 나라는 가난한지에 대한 해답을 ‘제도’에서 찾았다. 경제적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는 제도를 갖춘 나라는 번영하는 반면 그렇지 않은 나라는 궁핍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그는 결론 내렸다. 역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은 저서 《자본주의와 자유》에서 경제적 자유는 정치적 자유를 이루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수단이라고 역설했다.

제헌 70년을 맞아 개헌 논의가 뜨거운 가운데 많은 전문가가 경제적 자유를 확대하는 개헌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국내 대표적인 경제사학자인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와 헌법학자인 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부의 시장 개입을 줄이고 개인과 기업의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보장할 수 있도록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국가 개입 명문화 조항 삭제해야”

이 교수는 “경제는 기본적으로 개인 간 자유로운 교환이 이뤄지는 사적 영역”이라며 “경제에 대한 국가 개입을 명문화한 헌법 제9장의 경제 조항은 모두 삭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가 모든 것을 해야 한다는 국가주의적 발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권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경제민주화 강화 논의를 향한 전면적인 반론이다. ‘국민의 삶을 책임진다’는 기조를 표방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 역시 이런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게 이 교수의 지적이다.

이 교수는 “한국은 세계적으로 가장 강한 수준의 기업 규제를 하는 나라인데 이는 경제민주화 조항을 통해 정부가 시장에 개입할 길을 열어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경제민주화 강화는 반시장적·반기업적 정서에 기반해 사회주의로 가는 길”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부를 착취의 결과로, 기업을 탐욕의 소산으로 보는 시각이 경제민주화 강화 주장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자본가의 투자와 축적 없이는 나라가 부유해질 수 없고 기업은 기업가와 종업원 간 신뢰와 협력을 통해 운영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불평등과 양극화가 경제민주화 강화 논의의 배경이라는 지적엔 “헌법에 규정하지 않고도 경제주체 간 불균형을 시정하는 정책을 펼칠 수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또 “국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개인의 자유”라고 강조했다. 국가 권력에 맞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 헌법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헌법이 국민 개개인을 자유인으로 규정하는 한 그에 대응하는 경제 체제는 자유시장경제가 돼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헌법상 재산권 조항도 사유재산의 권리를 더욱 확실하게 보장하는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헌법 제23조 1항은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 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어 2항엔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해야 한다’고 돼 있다. 이와 관련해 이 교수는 “재산권을 절대적 권리가 아니라 상대적 권리로 규정했다”며 “국가가 국민의 재산을 임의로 빼앗아도 공공복리라는 명목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매우 강한 제약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재산권의 자유는 신체의 자유와 함께 자유의 가장 중요한 본질”이라며 “자유인이 스스로 노력해 취득한 재화는 국가라고 해도 임의로 탈취할 수 없는 절대적 권리라는 것이 서유럽에서 발달한 근대 헌법의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경제적 자유를 확대하고 정부 개입을 축소하는 세계적 조류를 따라가지 않으면 저성장과 일자리 부족 등 한국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경제 민주화도 시장경제 기반 둬야”

김 교수는 “헌법상 경제민주화 조항은 불공정을 해소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지만 자유는 공정에 우선하는 가치”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경제민주화는 어디까지나 자유시장경제를 기본으로 해서 공정한 경쟁 질서를 마련하자는 것이지 국가가 시장에 직접 개입하라는 의미는 아니다”며 이같이 설명했다.

김 교수는 약자를 배려하는 의미로 경제민주화를 해석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헌법상 경제 조항이 아니라 사회권 조항에 나오는 내용”이라며 “빈곤층 등을 위한 정책은 국민 기본권 보장 차원에서 해야 하는 일이지 시장경제 질서를 희생하면서까지 할 일은 아니다”고 말했다.

헌법상 평등의 의미도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하는 것이지 모든 것을 같게 하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런 의미에서 복지정책도 국가 재정이 감당할 수 있고 시장경제 원리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시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무상 복지라고 하지만 그 재원은 국민 지갑에서 나온다”며 “세금으로 하는 복지정책을 무상이라고 하면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공무원의 노동 3권을 보장하자는 주장과 관련해선 “그러려면 직업 공무원제부터 없애야 한다”고 지적했다. 헌법에서 공무원의 신분을 보장해주고 있는데 노동 3권까지 인정할 순 없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독일도 직업 공무원은 노동 3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임금 협상도 노조총연맹 산하 공무원위원회를 통해 간접적으로 한다”며 “직업 공무원제와 노동 3권은 함께 갈 수 없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한국은 미국, 유럽과 달리 군주와 귀족에 맞선 시민계급을 형성하지 못한 채 근대화를 경험했다”며 “개헌이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동력이 되려면 국민 개개인의 책임의식과 법치에 대한 인식도 함께 성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 이영훈 서울대 명예교수

◇서울대 경제학과-서울대 경제학 박사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경제사학회 회장 ◇한국제도경제학회 회장 ◇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낙성대경제연구소 이사장

■ 김상겸 동국대 교수

◇동국대 법학과-독일 프라이부르크대 법학 박사 ◇프라이부르크대 공법연구소 연구원 ◇건설교통부 토지공개념검토위원 ◇동국대 법학과 교수 ◇한국인터넷법학회 회장 ◇유럽헌법학회 회장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