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실리콘앨리 꿈꾸는 '신림동 고시촌'

입력 2017-12-22 18:55
서울대 스타트업 캠퍼스 '녹두.zip' 개소… 15개팀 34명 청년 창업가 입주

창업 실험
20~30대 청년인구 비율 47%
스타트업 혁신 실험할 최적 장소
서울대서 우수인력 유치 가능
원룸 이사견적 비교 앱 등 개발

문화 실험
서울대 미대생 만든 '지속가능갤러리'
2015년 설립한 '광태소극장'
인디영화 상영 '자체휴강 시네마'
다양한 문화예술 실험 한창


[ 황정환/장현주/배태웅 기자 ] 서울대 인근 신림동 고시촌은 ‘합격’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모여든 청년들로 늘 붐볐다. 그러나 사법시험이 폐지되고 고시생들이 떠나자 일대 상권은 급격히 몰락했다. 1990년대까지도 이곳엔 서점만 100개가 넘었지만 이젠 20여 개만이 남았다. 청춘들의 토론의 장이 펼쳐졌던 유서 깊은 노포(老鋪)들이 사라진 자리를 천편일률적인 프랜차이즈가 채우며, 문화의 불모지가 됐다. 아지트로 삼던 서울대생들도 하나둘 떠났다.

쇠락 일로를 걷던 신림동 고시촌 부활을 위해 청년 창업가들과 서울대가 뭉쳤다. 고시촌을 미국 뉴욕 맨해튼의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집결지 ‘실리콘앨리’처럼 기술과 문화가 어우러진 도전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는 원대한 목표 아래서다. 22일 이곳에 문을 연 서울대 스타트업 캠퍼스 ‘녹두.zip’은 그 시작이다. 법전 든 고시생들의 거리를 15개 팀 34명의 창업가들이 채웠다. 문화가 사라진 거리를 되살리려는 청년 예술인들도 있다. 아직 고시촌에선 ‘이방인’인 그들이 고시촌을 한국의 ‘실리콘앨리’로 만들 수 있을까?


◆‘젊음의 거리’서 희망 본 창업가들

서울대는 22일 고시촌 한복판 옛 광장서적 자리에 청년 창업 지원 공간인 ‘녹두.zip’을 열었다. ‘녹두.zip’은 사법시험 폐지 등으로 침체된 고시촌을 ‘창업촌’, ‘청춘촌’으로 바꾸는 ‘관악 큐브 청년 창업밸리’ 프로젝트의 첫 사업이다. 지하 1층~지상 4층 건물에 스타트업 사무 공간과 지원시설, 창업 카페 등이 마련됐다. 최막중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2012년 말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문을 닫은 광장서적은 고시촌의 성쇠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상징적 존재였다”며 “이곳에 ‘녹두.zip’이 들어선 것은 시대 교체와 함께 특유의 학구적 문화를 재건한다는 의미가 담긴 것”이라고 말했다.

‘녹두.zip’의 첫 입주자로는 15개 팀, 34명의 청년 창업가가 선정됐다. 이날 개소식에서 만난 이들 창업자는 “고시촌에서 성공의 가능성을 봤다”고 입을 모았다. 이곳의 20~30대 청년인구 비율이 47%에 달하는 만큼 스타트업들이 혁신을 시험할 테스트베드로서 최적의 장소라는 설명이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 ‘하이라이트’ 영상만 추려 볼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 중인 손동현 에스프레스토 대표(30)도 이 같은 취지에 공감했다.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박사과정생으로 ‘실험실 창업’에 나선 그는 “인접한 서울대에서 우수한 인재를 쉽게 찾을 수 있다”며 “공학 과학 경영학 법학 등 다양한 전공 및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협력할 수 있는 공간이란 점에서 매력적”이라고 전했다. 원룸 이사 견적 비교 앱(응용프로그램)을 개발한 한성진 씨(28)도 고시촌의 ‘젊음’에 주목했다. 한씨는 “관악구는 서울 최대의 1인가구 밀집 지역으로 이들 대부분이 20~30대 청년”이라며 “우리의 아이템을 실험할 수 있는 최적의 입지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최 교수는 “창의적 아이디어는 ‘만남’과 ‘소통’에서 나온다”며 “고시촌 청년들이 자연스럽게 만나 맥주 한잔을 마시며 아이디어와 지식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녹두.zip’”이라고 말했다. “억지로 아이디어를 짜낼 게 아니라 먼저 놀 수 있는 판을 깔아줘야 한다”는 얘기다.

◆‘문화 황무지’ 개간 나선 예술 청년들

고시촌을 다양한 예술 실험이 펼쳐지는 문화 공간으로 변신시키겠다는 청년들도 있다. 서울대 미대 대학원생들이 뭉친 ‘지속가능갤러리’의 박지원 대표(26)는 고시촌만의 공간 특색에 맞는 미술전시, 플리마켓 등 다양한 사업을 준비 중이다.

썸컴퍼니앤광태소극장 창립멤버인 조민 대표(35)와 전단아 부대표(33)는 연극 분야에서 승부수를 던졌다. 이들은 2015년 고시촌 내 첫 소극장인 광태소극장을 설립했다. 고시촌을 배경으로 제작한 ‘청춘동 편의점’과 ‘청춘동 이상한 동물병원’은 주민뿐 아니라 외부 사람들에게도 큰 공감을 얻었다.

‘자체휴강 시네마’ 대표인 영화학도 박래경 씨(30)도 고시촌이 나아갈 길을 문화에서 찾았다. 올해 초 개관한 ‘자체휴강 시네마’는 한 달에 4~6편 독립 단편영화만을 상영하는 좌석 수 8개의 작은 영화관이다. 관람료는 단 3000원으로 이 가운데 1000원이 감독에게 간다. 박씨는 “3개월 만에 망할 줄 알았는데 꾸준히 관객이 들고 있다”며 “40~50석의 독립영화관을 이곳에 차리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황정환/장현주/배태웅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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