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떼어낸 틸러슨 "일단 만나자"… 북한에 보내는 '마지막 초대장'

입력 2017-12-13 17:34
수정 2018-03-13 11:10
미국 '조건없는 대화' 왜 내놨나

외교적 시한 얼마 안남아
"대화 물꼬부터 트자 날씨·탁자…뭐든 좋아"
맥매스터 "지금이 북한과 무력충돌 피할 최고 기회"

중국 향한 마지막 명분쌓기
북한 불응 땐 "원유 끊어라" 중국에 요구할 명분 힘 실려

청와대 "대화 촉구 반복한 것"


[ 뉴욕=김현석/김채연 기자 ] “자, 그냥 만나자. 날씨 얘기를 할 수도 있다. 북한만 좋다면 테이블이 둥근지 사각인지에 대해서도 논할 수 있다. 적어도 앉아서 얼굴을 마주볼 수 있다면 그 다음에 로드맵을 펴고 문제를 조금씩 해결해갈 수 있지 않겠나.”

북한이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을 국빈 방문한 1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북한에 조건 없는 첫 만남을 제안했다.

이는 지난달 29일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을 발사한 이후 북·미가 설전을 벌인 것과는 180도 다른 태도다. 미국이 대화 테이블에 당장 나오라며 ‘최후의 압박카드’를 던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정말 조건 없는 대화일까

틸러슨 장관의 제안은 미 싱크탱크인 애틀랜틱카운슬과 한국의 국제교류재단이 워싱턴DC에서 공동 주최한 ‘환태평양 시대의 한·미 파트너십 재구상’ 토론회에서 나왔다. 그는 “무슨 얘기라도 좋으니 마주앉아 얼굴을 보고 대화하자”고 말하며 ‘비핵화’를 전제로 한 대화 제의가 현실적이지 않다고 인정했다. ‘전제조건’이 비현실적이라는 사실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동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일단 첫 대화를 하기 위한 문턱을 낮췄다는 해석은 가능하지만 미국이 비핵화를 양보한 것은 아니라는 시각이 더 많다. 외교 소식통은 “틸러슨 장관의 전제조건 없는 대화는 첫 만남에 한정돼 있으며, 대화 주제는 여전히 비핵화인 만큼 큰 변화는 아니다”고 해석했다. 위성락 전 주러시아 대사는 “틸러슨의 발언으로 미국의 비핵화 협상 기조가 바뀐 것은 아니다”며 “북·미 간 비핵화 대화를 하기 위한 사전 대화에는 조건이 없다는 뜻으로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행정부 기존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봐야 하며 확대 해석을 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 명분 쌓기’일수도

중국을 향한 미국의 ‘마지막 명분 쌓기’라는 해석도 나온다. 북한이 ‘조건 없는’ 대화마저 거부한다면 중국 기업과 은행 등에 대한 강력한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이나 중국에 대북 원유 공급 중단 등을 더욱 강하게 요구할 수 있다는 얘기다. 틸러슨 장관은 토론회에서 “북한이 마지막에 대화에 응한 때는 중국이 원유 공급을 끊었을 때”라고 몇 차례나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외교적 해결을 위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위기감 속에 북한에 마지막 기회를 준 것으로 분석했다. 외교 소식통은 “그동안 미국의 대북정책을 주도해온 틸러슨 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등이 경질되고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 등이 새로 국가안보팀을 맡을 것이란 소문이 계속 돌고 있다”고 전했다.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이날 싱크탱크인 폴리시익스체인지가 주최한 행사에서 “바로 지금이 북한과의 무력충돌을 피할 마지막이자 최고의 기회”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틸러슨 장관의 발언에 대해 박수현 대변인 명의의 입장문을 내고 “북한이 도발과 위협을 중단하고 대화에 복귀해야 한다는 미국 측의 입장을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뉴욕=김현석 특파원/김채연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