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구멍 뚫린 암표거래 규제

입력 2017-12-11 18:08
수정 2018-03-28 10:30
[ 양병훈 기자 ] “뮤지컬 ‘햄릿:얼라이브’ 크리스마스이브 공연의 2열 좌석을 장당 18만원에 팝니다.”

“아이돌그룹 비투비(BTOB) 24일 콘서트의 A구역 좌석을 장당 11만원에 양도합니다.”

인터넷 최대 중고물품 거래 사이트인 중고나라에 11일 올라온 글이다. 이들 티켓의 정가는 햄릿:얼라이브가 13만원, 비투비 콘서트가 8만8000원이다. 정가에 웃돈을 얹어서 파는 이른바 ‘암표 판매’를 하고 있는 것. 연말 공연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아진 터라 이런 글이 중고나라에 하루에도 수십 건 올라오고 있다. 이 글을 올린 사람들은 다른 공연 티켓도 웃돈을 받고 판다는 글을 반복해서 올리고 있었다. 암표 거래를 전문적으로 하는 ‘꾼’으로 보였다.

경범죄처벌법이 암표 거래를 금지하고 있는데 어떻게 된 일일까. 관계 부처에 문의하니 “이 법은 오프라인 암표 판매만 금지하고 있어 온라인 판매는 단속할 근거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실제로 이 법 3조 2항 4호는 ‘공연장이나 승강장 입구’에서 암표를 판 사람만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 만들어진 법이 시대가 변했음에도 개정되지 않아 단속에 사각지대가 생긴 것이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이번 국회에서만 경범죄처벌법 개정안이 4건, 공연법 개정안이 2건 발의됐지만 소관 상임위원회 단계에서 계류 중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공연법을 개정하는 것보다 경범죄처벌법을 개정하는 게 낫다는 입장이다. 공연법은 공연 티켓 암표 거래만 규율하지만 경범죄처벌법은 명절 기차표 등 다른 티켓의 암표 거래도 금지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납득이 가는 설명이다. 그러나 문체부 관계자의 다음 말로 관련 법 개정이 왜 더딘지 유추해볼 수 있었다. “경범죄처벌법은 경찰청 소관이다. 문체부가 제안할 수는 있지만 법 개정을 추진할 순 없다.”

경찰청 입장에서 암표 거래는 법의 이름 그대로 ‘경범죄’다. 문체부가 ‘공연시장 교란을 막는다’는 의미로 접근하지 않으면 이 법 개정안은 힘을 받기 어려워 보인다. 부처 칸막이를 지키는 일보다 낡은 법을 고치는 일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양병훈 문화부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