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을 통한 혁신의 극대화 시대 돌입
실패 용인하고 자유로운 기업활동 보장해
추종자 아닌 파괴적 리더십·비전 길러야
정갑영 < 연세대 명예특임교수, 전 총장 >
얼마 전 베스트셀러 《제5시대의 기업혁신》의 저자 매튜 르 메를르가 한국생산성본부 60주년 행사에서 열광적인 강연을 했다. 메를르의 저작이 세계적 관심을 끌었던 배경은 여러 요인으로 설명된다. 그는 최근 인류사회의 변화를 ‘제5시대(The Fifth Era)’로의 진입이라고 규정하고, 이런 시대적 변화를 선도하는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 초일류기업의 성공요인을 분석했다. 특히 세계 최대 엔젤 투자기업의 최고경영자(CEO)로서 첨단 정보기술(IT) 기업과의 다양한 협업 경험을 바탕으로 기업과 정부의 혁신전략을 제시했다.
왜 제5시대인가? 인류의 문명은 맨 처음 수렵시대를 통해 형성돼 농경시대와 상업시대를 거쳤고, 18세기 이후 현재까지 산업시대의 화려한 번영을 이뤄왔다. 그러나 최근 30여 년간 인류는 각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인 파괴적 혁신을 맞으며, 전인미답의 다섯 번째 시대로 이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래가 어떻게 변화할지 불확실한 가운데, 디지털 혁신을 통해 과거와는 전혀 다른 가치창출의 패러다임이 새롭게 형성되고 있다. 산업시대의 지상과제였던 경제적 가치의 극대화도 제5시대에는 혁신의 극대화로 변화했다고 강조한다.
제5시대를 살아갈 생존의 법칙은 무엇인가? 30년 전만 해도 무명의 작은 기업에 불과했던 애플과 구글 등이 인류의 문화를 선도하는 거대기업으로 도약한 요인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 인터넷 기반으로 출범한 이런 기업들이 왜 IT 강국이라는 한국에서는 탄생하지 않을까? 큰 자본이나 인력이 소요되지 않는 이런 기업들은 어느 나라에서나 등장할 수 있지 않은가. 메를르는 모든 문제의 해답을 혁신역량(innovation capacity)에서 찾고 있다.
우선 미래 비전을 갖고 파괴적인 혁신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리더십이 가장 중요하다. 즉 톱 다운의 혁신문화가 있어야 가능하다. 특히 정부가 혁신을 활성화할 수 있는 기본적인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조성해 주어야 한다. 혁신은 기존의 제도와는 갈등을 빚기 마련이다. 규제를 완화하고, 실패를 용인하며, 진취적인 모험과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부추겨야만 혁신역량이 강화될 수 있다. 규제와 통제의 ‘엄부시하(嚴府侍下)’에서 잔뜩 움츠러든 기업에 어떻게 혁신역량을 기대하겠는가.
나아가 정부는 혁신의 클러스터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대학 연구력과 산업 기술이 연계되고, 기술창업이 손쉽게 이뤄질 수 있는 유기적인 클러스터가 필요하다. 실리콘밸리의 성공도, 세계적 IT 기업들의 새로운 역사도 모두 대학 연구와 벤처기업의 상호연계, 신기술에 대한 포용과 용이한 자금조달 등 효율적인 클러스터가 바탕이 된 것이다.
당장 미국 월가에서는 9000억달러에 근접한 애플의 시장가치가 언제 1조달러(약 1130조원)를 돌파할 수 있느냐가 큰 화제다. 1976년 스티브 잡스의 아이디어로 출범한 작은 컴퓨터 회사가 스마트폰으로 인류의 생활양식을 바꾸며 승승장구하더니, 지금 또 하나의 지구 역사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125년 전통의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시가총액은 1600억달러를 밑돌며 다우산업지수를 구성하는 30대 기업에서도 탈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 혁신이 갈라놓은 다윗과 골리앗의 운명 아니겠는가.
최근의 급격한 변화가 제5시대든 4차 산업혁명이든, 세계 각국은 지금 경제와 사회를 혁신 모드로 전환하는 전략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독일은 2011년부터 제조업의 컴퓨터화를 기치로 ‘인더스트리 4.0’ 전략을 시행하고 있고, 일본도 이미 나라 전체의 디지털화와 혁신을 목표로 ‘사회 5.0’을 시행 중이다.
그런데 한국은 지금 어떤 미래전략을 추진하는지 여전히 안갯속이다. 제5시대는커녕 오히려 과거로 회귀해 제3, 4시대를 그대로 답습하는 듯하다. 스티브 잡스의 말처럼 “혁신은 선도자와 추종자를 가르게 된다”. 언제까지 미래를 위한 혁신은 도외시하고, 고통스러운 추종자로 머무를 것인가. 지금은 온 나라가 미래의 비전을 갖고, 혁신역량의 구축에 매진해야 한다. 이제 과거는 버리고, 서둘러 제5시대의 생존전략을 찾아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정갑영 < 연세대 명예특임교수, 전 총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