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첫 PGA투어'가 K골프에 남긴 숙제

입력 2017-10-23 17:29
현장에서

'똑바로 멀리 치는' 톱프로들
K골퍼와 '격이 다른 클래스'

사진 찍고…전화 벨소리…
토머스, 갤러리에 날선 반응
갈길 먼 '한국식 골프문화'

서귀포=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


[ 이관우 기자 ]
“진짜 잘 치죠?”

배상문(31)은 지난 19일 국내 첫 미국프로골프(PGA) 정규 투어 ‘더CJ컵@나인브릿지’ 대회 개막 직후 이렇게 말했다. PGA투어 선수들의 기량이 얼마나 대단한지 국내 팬들이 알게 된 것을 즐기는 듯한 말이었다.

가장 확연한 차이는 비거리다. 20~40m 차이가 났다. PGA투어 측은 이번 대회에 거리 측정 장비를 가져오지 않았다. 페어웨이 바닥에 박힌 거리 표지판을 토대로 추정하거나 거리가 분명한 파3에서 몇 번 아이언을 잡는지로 갤러리들은 비거리를 추정했다.

203야드짜리 파3, 13번 홀이 대표적이다. PGA투어 선수들은 대개 5, 6번 아이언을 잡았다. 국내 투어 선수들은 4번 아이언을 주로 잡았다. 김승혁(33)은 “4번을 잡다가 바람이 조금 불 듯하면 하이브리드를 쓰기도 했다”고 말했다. 여기까지는 한두 클럽 정도다. 초대 챔피언인 저스틴 토머스(미국)는 몇 번을 잡았을까. 9번 아이언이다. 이형준(25)은 “두 클럽이 뭐예요. 네 클럽까지 난다니까요”라며 웃었다.

더 질리는 건 그 비거리에서도 정확도를 지킨다는 점이다. 김승혁은 숙제를 받은 느낌이라고까지 했다. 그는 “320~330야드를 치고도 페어웨이를 지키는 괴물들을 이기기 위해선 쇼트게임과 퍼팅이라도 더 다듬어야겠다는 반성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갤러리 사이에선 ‘친절한 데이씨(제이슨 데이)’와 ‘까칠한 토머스(저스틴 토머스)’가 회자됐다. 골프 실력이 성격과는 별로 상관없음을 상징하는 대조라며 그 다양성을 즐겼다. 데이는 갤러리들이 한국식 응원인 ‘파이팅’을 외쳐주면 웃으며 눈인사를 했고, 한 시간가량의 사인 공세를 지친 기색 없이 소화했다.

토머스는 감정과 생각을 갤러리들에게 직선적으로 표현했다. 마지막 날 15번 홀에선 동반자인 인도의 아니르반 라히리가 퍼팅하는 도중 갤러리 속에서 카메라 셔터 소리가 나자 “노 카메라! 플리즈”라고 대신 주의를 주기도 했다. 한 갤러리는 “자기가 유명하니까 사진을 찍는 것인데 성질을 부린다”며 서운해했다.

가장 눈길을 끈 것은 ‘한국식’ 갤러리 문화다. 수시로 스마트폰 카메라 소리와 통화 벨이 울렸다. 투어 선수는 물론 이런 상황에 익숙한 한국 선수까지 힘들어했다. 퍼팅 스트로크를 하는 도중 카메라 소리에 균형을 잃은 김시우(22)는 퍼터를 놓치기까지 했다.

한국의 스마트폰은 모두 카메라 음이 내장된 제품이다. 몰래카메라, 사생활 침해 등을 막자는 취지에서 생긴 우리와 일본만의 제도다. 한국에 온 PGA투어 선수들은 처음 경험하는 엄청난 ‘찰칵’과 ‘팅~’ 세례에 당황할 수밖에 없다.

제도를 바꾸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경기를 사진에 담기보다 마음과 기억에 담는 문화를 받아들여 익히는 게 보다 현실적인 듯하다. PGA 현지 투어에선 오래전 정착된 갤러리 문화다. 흐름이 끊기지 않는 질 높은 경기를 보기 위해 투어와 갤러리 스스로 진화시킨 유산이다. ‘공공재’ 더CJ컵@나인브릿지가 남긴 숙제다.

서귀포=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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