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개 업무에 대해서만 파견 허용
불법 양산하고 기업경쟁력 약화
자유로운 파견으로 일자리 늘려야
박기성 < 성신여대 교수·경제학 >
필자가 근무하는 대학은 자정에 주차장 셔터가 내려간다. 연구실에서 늦게 나올 때 경비도급업체 직원에게 “셔터를 올려주실 수 있나요?” 아니면 “셔터를 올려주세요!”라고 말해야 할지 망설이곤 한다. 전자는 부탁하는 것이고 후자는 지시하는 것이다. 후자를 계속 말하면 도급업체 직원에게 업무지시를 한 것이므로 불법파견이 될 수 있다. 엄밀하게는 대학본부에 연락해서 대학본부가 도급업체에 연락하고, 도급업체가 담당직원에게 지시해야 불법파견의 소지를 없앨 수 있다.
파견의 경우는 파견 나온 직원에게 파견 요청 업체가 지휘·명령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파견법은 32개 업무에 대해서만 파견근로를 허용하고 있는 포지티브 방식이다. 그 업무들은 주유원, 주차장 관리원 등과 같은 단순 업무가 대부분이며 제조업무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
기업의 본질은 관련 업무의 비용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정규직을 채용하든, 다른 기업에 도급을 주든, 도급업체의 직원이 원청업체에서 일을 하든(사내도급), 기간제근로자를 채용하든, 가장 효율적인 업무 방식을 택해야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법원은 파견법에 근거해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사례 등에서 사내도급을 불법파견으로 판결함으로써 기업의 경쟁력을 깎아내리고 있다.
최근 고용노동부는 파리바게뜨 가맹점에서 근무하는 도급업체 소속 제빵·카페기사 5378명을 불법파견으로 규정하고 본사가 직접 고용토록 시정지시했다. 도급계약은 가맹점과 도급업체 간에 체결된 것이고 본사는 가맹사업법에 따라 가맹점에 대해 경영 및 영업활동 등에 대한 지원·교육과 통제의 일환으로 가맹점의 제빵기사 등을 접촉한 것이다. 굳이 문제가 된다면 가맹점주가 문제가 될 수 있는데, 본사가 직접 고용하라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 본사가 직접 고용해도 가맹점에서 근무하는 제빵기사 등은 현장에서 어쩔 수 없이 가맹점주의 업무지시를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므로, 이는 다시 불법파견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현실과 동떨어진 파견법이 대한민국 어디에서나 문제를 야기하고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다.
파견근로는 일본, 독일 등 선진국에서는 보편적이다. 일본은 1999년에 파견 금지 업무만을 열거한 네거티브 방식으로 파견법을 개정했으며, 2003년엔 제조업무에도 파견을 허용했다. 이에 따라 파견근로자가 2003년 50만 명에서 2013년 127만 명으로 급증했다. 독일은 ‘하르츠 개혁’의 일환으로 2003년 파견근로가 자유화되면서 파견근로자가 32만 명에서 2013년 81만 명으로 증가했다. 반면 우리나라 파견근로자는 13만 명 수준으로 파견법 제정 직전인 1997년 22만5000명보다 오히려 감소했다. 일본과 독일의 사례에 비춰 볼 때, 제조업무 등을 포함한 거의 모든 업무에 파견을 허용하고 유해하거나 위험한 업무 등 일부 업무에만 파견을 금지하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파견법을 개정하면 한국에서도 수많은 새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다.
생산의 2대 요소는 노동과 자본이다. 자본부문은 공급자와 수요자를 매개해 주는 은행, 증권회사 등 금융기관이 잘 발달돼 있다. 반면 노동부문의 공급자와 수요자를 연결해주는 중개기관은 개념조차 정립돼 있지 않다. 금융시장은 개방경제에서는 자본이동과 같은 세계화의 거친 파도 때문에 국제 금융시장과 통합되지 않을 수 없고 국제기준에 따라 상대적으로 효율적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노동부문은 세계화로부터 격리돼 왔고 곳곳에 지대추구적 암초들이 산재해 있어서 국제기준에서 많이 벗어나 있으며 비효율적이고 불공정하다. 이대로라면 아무리 자본이 풍부해도 노동이 장애물로 작용해 경제가 성장은커녕 퇴보할 것이다. 파견회사는 노동시장의 중개기능을 하는 중요한 기관이므로 파견법을 개정해 자유롭고 건전하게 파견근로를 활성화함으로써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박기성 < 성신여대 교수·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