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미국 정부 요구에 따라 결국 개정 절차를 밟게 됐다. ‘FTA 효과부터 분석하자’며 유보적 자세를 취했던 한국 정부가 ‘FTA 폐기 불사’를 거론하는 트럼프 행정부에 무릎을 꿇은 모양새다. 정부는 그동안 재협상이 없을 것처럼 얘기해 왔지만, 미국의 압박이 계속 거세진 점을 고려할 때 어떤 형태로든 FTA 개정 협상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 더 많았다.
‘끌려다니는 협상을 않겠다’는 명분 때문에 정부가 너무 안이하게 대응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때부터 한·미 FTA를 ‘재앙’ ‘끔찍한 협정’으로 부르며 부정적인 인식을 보였고 취임 후에도 재협상과 폐기를 거듭 공언했다. 미국과 협상을 벌인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FTA를 폐기하겠다’는 서한까지 작성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미 양국이 FTA 개정에 합의한 만큼 더 중요한 건 이제부터다. 앞으로 있을 개정 협상에서 무엇을 지키고 얻어낼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전략을 세우는 게 급선무다. 자동차와 철강, 농업 등의 국내 산업이 받을 여파 분석과 함께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가 전체의 이익을 늘릴 협상 전략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미국은 국제무역위원회(ITC)를 통해 삼성전자와 LG전자 세탁기에 세이프가드(긴급 수입제한조치) 발동을 예고하는 등 FTA 이외에도 전방위적인 통상 압박을 계속 높이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의 주된 관심인 자동차와 농업 분야 등에서의 공세를 피하기 위한 수세적 협상 전략은 곤란하다. 오히려 미국의 세이프가드 남용 등을 견제할 방안을 요구하는 등 분명한 공격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등 불리한 조항들도 손봐야 하고, 한·미 서비스 교역에서 미국이 얻고 있는 대규모 흑자를 개선할 것도 요구해야 한다. 협상 전략을 짜기에 앞서 대미 교역과 관련한 기업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는 필수다. FTA 개정 협상은 명분이 아니라 실리가 관건이다. 당당한 자세로 꼼꼼하게 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