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직접 나와라"…조건 또 내건 노동계

입력 2017-09-26 19:19
정부, 노사정위원회 복원 위해 '양대 노동지침' 없앴는데…

한국노총 "8개 주체 참여하는 대화체 만들자" 제안
민주노총 "단협 시정명령 폐지 등 노조법 개정" 요구


[ 고경봉/심은지 기자 ]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26일 노동계와 대화체를 구성하려면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라고 제안했다. 전날 정부가 노동계의 핵심 요구사항 중 하나인 ‘양대 노동지침’ 폐기를 전격 수용하는 등 노동계에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복귀를 위한 ‘러브콜’을 보냈지만, 이를 거절하고 오히려 요구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 양대 노동지침은 저성과자 해고를 가능하게 한 일반해고 지침과 임금피크제 도입 등을 쉽게 하는 취업규칙 지침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도 단체협약 시정명령 폐지 등 각종 노동 현안 개선 없이는 노사정위에 복귀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정부 일각에서는 “최근 일련의 정책으로 정부와 노동계의 신뢰 관계가 회복 단계에 들어섰다”고 자평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계 편들기에 나서다 보니 정권 초부터 노조에 끌려다니는 양상이 돼버렸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노동계 “대통령과 얘기하겠다”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은 26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6층 대회의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새로운 사회적 대화를 위한 3단계 프로세스’ 구상을 밝혔다. 김 위원장은 1단계로 문 대통령을 비롯해 한국노총·민주노총 등 노동계와 대한상공회의소·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사용자 단체, 고용노동부와 기획재정부, 노사정위원회 등 8개 주체가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체 구성을 제안했다. 김 위원장의 제안은 문 대통령 공약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대선 기간 “노동존중 사회 실현을 위해 비정규직·청년·여성을 대표하는 노동자 대표와 대기업·중소기업 등 경영계 대표들이 함께 모이고 대통령이 직접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체를 추진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김 위원장은 일단 이 대화체가 노사정 대화기구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새로운 대화체를 통해 신뢰 회복을 한 뒤 노사정 대화기구를 논의해 보겠다고 했다. 일단 노사정위 참여 여부에 대한 확답 없이 대통령 공약부터 시행하라고 역제안한 셈이다.

민주노총은 더 부정적인 태도다. “양대지침 폐기는 민주노총의 노사정위 참여 여부와는 무관하다”며 “정부는 이를 시작으로 노조권리 보장을 위한 추가적 행정조치 시행과 노조법 전면 개정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은 28일 청와대 앞에서 ‘대정부 5대 요구’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계의 주장을 정부가 받아들이도록 압박할 계획이다.

노동계 반응에 대해 전문가들의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는 “어떤 식으로든 노동계가 대화체를 제안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며 “대통령이 대화체에 참여해 위상을 높이면 노동계의 인식도 바뀌고 각종 제도도 빨리 마련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대통령이 노사정협의체에 직접 나서면 정부로서는 상당한 부담을 안게 된다”며 “노동계의 요구 내용을 정치인인 대통령이 거부하기도 힘든 데다 합의안도 섣불리 내놓을 수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애타는 정부, 몸값 높이는 노동계

정부는 그동안 노사정위 복원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정부 노동정책의 양축인 고용부와 노사정위 수장에 각각 한국노총 출신 김영주 장관과 민주노총 출신 문성현 위원장을 영입했다. 양대지침 폐기 역시 재계의 강한 반발을 무릅쓰고 노동계에 대한 유인책으로 마련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노동계 반응은 냉담하다. 문 위원장이 최근 “내년 2월께는 양대 노총이 노사정위에 복귀할 것”이라고 말했다가 다음날 민주노총으로부터 “경솔한 발언을 하지 말라”고 면박을 당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노사정위가 가동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 노조 집행부가 노사정위에 들어갔다가 노조 내부 강성 목소리에 밀려 조직 내에서 비판을 당하고 교체되거나 노사정위를 탈퇴하는 사례가 반복됐다. 한 교수는 “당분간은 정부가 친노동계 행보를 통한 러브콜을 이어가고 노동계는 이를 활용해 요구조건을 높여나가는 구도가 이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고경봉/심은지 기자 kg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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