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욱의 일본경제 워치] "이자 안받고 돈 빌려드립니다" 일본 은행들의 '고육책' 언제까지 지속될까

입력 2017-08-30 08:01
대출금리가 제로(0)여도 괜찮다?

일본의 주요 은행들이 금리 0%로 대출처를 찾아 나서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은행들의 움직임을 두고 ‘제로 헌터’라는 용어도 등장했다고 합니다. 이자한푼 안받고 돈을 빌려주겠다니! 이런 상식을 벗어난 움직임은 어떻게 나타난 것일까요.

원인은 바로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의 ‘마이너스 금리’정책에 있습니다. 중앙은행이 연 -0.1%의 기준금리를 적용하고 있으면서 시중 은행들로선 남아도는 돈을 일본은행의 당좌예금에 맡겨 손해를 보기보다는 차라리 ‘본전’에라도 대출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제로 금리에 아무곳에나 돈을 빌려주는 것은 아닙니다. 안전한 곳으로 빌려줄 돈이 몰리고 있습니다. 제로금리 대출이 향하는 곳은 바로 정부관련 기관이라고 합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정부계 자금운용 중 특별 회계나 독립 행정 법인의 입찰에 몰린 은행들의 자금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고 합니다.

일본 재무부가 지방교부세 특별회계로 거의 매주 실시하는 입찰에서 낙찰액은 1조500억엔이지만 6월 중순까지 매번 15조엔 가까운 금액이 응찰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응모배율은 14배로 사상 최고 수준이라고 합니다. 재무부가 2016년 11월 최저금리를 연0.001%에서 연0%로 낮춘 뒤 계속 제로금리가 적용되고 있지만 은행들의 응찰이 끊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독립행정법인인 예금보험기구도 지난해 5월 이후 차입금 입찰의 낙찰평균 금리가 ‘제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일본 학생지원기구도 2016년 차임금 입찰 금리가 ‘제로’였습니다.

오랫동안 일본의 은행들은 미미한 수준이긴 하지만 금리가 붙던 일본은행의 당좌예금을 유용한 ‘창고’로 사용해왔다고 합니다. 돈 빌려줄 곳이 여의치 않으면 중앙은행에 맡겨둬 안전하면서도 소정의 수익도 거둘 수 있는 구조였지요. 하지만 2016년 2월부터 일본은행이 일부 당좌예금에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고 합니다.

결국 손해를 볼 수 없거나, 손해를 보더라도 최소화해야 하는 은행들은 일본은행 당좌예금에서 돈을 빼기 시작했습니다. 미즈호파이낸셜그룹은 올 4~6월에 일본은행 당좌예금 예치금을 5조3000억엔 정도 줄이고 대신 국채보유를 늘렸다고 합니다. 일본국채 단기물 금리도 마이너스지만 당좌예금 마이너스금리보다는 손실이 적어 국채로 자금을 돌렸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일본 은행들의 이같은 ‘고육책’도 한계를 맞이하는 듯한 분위기입니다. 제로금리 대출도 결국 규모의 문제이지 ‘손해가 나는 장사’이지 ‘수익을 보는 장사’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은행들의 경우, 마이너스 금리 상황을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순익이 급감하고 있기도 합니다. 미쓰비시UFJ, 미쓰이스미토모, 미즈호 등 일본 3대 은행의 순이익은 지난해에 전년 동기대비 12%나 줄었습니다. “올해는 침체가 더 가속화되고 있다”는게 은행 관계자들의 전언이라고 합니다.

일본 은행들은 과연 미래가 있는 것일까요? 초유의 마이너스 금리 실험이 어떤 결과를 맺을지, 어떤 새로운 현상을 일으킬지 관심있게 지켜볼 일입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