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5년만 문제 없으면 되나

입력 2017-08-29 18:50
공무원 증원, 탈원전, 건강보험 보장 확대 등
눈앞 환호성에 취해 풀어대는 선물 보따리
5년 뒤 내다봐 미래세대 부담 안되게 해야

김영수 < 서강대 교수·사회학·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 grumpy@sogang.ac.kr >


바둑에서 고수와 하수의 가장 큰 차이는 얼마나 많은 수를 내다보냐는 것이라고 한다. 급이 낮은 아마추어들이 한 수나 두 수 앞도 보지 못하고 전전긍긍할 때 고수들은 10수나 20수를 내다보며 착점을 하니 승패는 이미 정해진 것일 수밖에 없다.

이런 고수와 하수의 차이는 비단 바둑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회 어느 분야든 얼마나 체계적으로 상황을 분석하고 그에 맞춰 현실적으로 계획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일의 성패는 뚜렷이 갈리게 마련이다. 이런 관점에서 지금까지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일련의 정책들은 과연 고수의 작품일까라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

향후 5년간 꼭 추진하겠다는 100대 과제에 드는 비용만 정부 발표에 따르더라도 178조원이 넘는다. 물론 이 정책들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관건은 재원이다.

정부는 소요 예산의 반이 넘는 95조4000억원을 기존의 정부 지출을 줄여서 충당할 계획이다. 그러나 2017년 전체 예산이 400조원을 겨우 넘은 상황에서 단순한 계산만으로도 매년 20조원 가까이를 감축하겠다는 계획은 현실성이 없다. 물론 세제개편을 통해서도 향후 5년간 23조6000억원을 확보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수치가 필요한 재정 규모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건 삼척동자도 한눈에 알 수 있다.

향후 5년간 17만 명이 넘는 공무원을 증원하겠다는 계획을 보자. 17만 명이 넘는 공무원을 평균 근속기간인 28년간 유지하는 데 드는 직접적인 비용만 납세자연맹 추산에 따르면 526조원이 넘는다. 국회예산정책처의 지극히 보수적인 추산으로도 327조원 이상이 소요된다. 그런데 작년 통계청에서 발표한 인구추계를 보면 우리나라 인구는 2030년을 전후로 자연 감소가 시작된다. 여기에 더해 생산인구 감소와 고령인구 증가가 합쳐져 생산인구 100명이 부양해야 할 65세 이상 노년인구는 2015년 17.5명에서 2025년에는 29.4명, 2035년에는 47.9명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물론 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 또한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다. 까마득한 미래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실제로 시작된 심각한 현실이다.

지금 계획대로 공무원을 늘리는 건 경제적 재앙이다. 총인구와 생산가능인구가 급감하는 것과는 반대로 공무원의 절대 수는 물론 총고용인구에서 공공부문이 차지하는 비중만 급증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당장 시작된다. 올해 3000명을 시작으로 항후 5년간 1만6000명의 교사 증원을 계획한다는 소식도 걱정스럽긴 마찬가지다.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의 유소년 인구는 예상보다 훨씬 빨리 줄고 있다. 2015년 617만 명이던 초·중등학교 학령인구는 2025년에 527만 명으로 90만 명이 줄고, 2035년에는 다시 485만 명으로 감소한다. 이 수치만으로도 교사 증원은 타당성을 잃는다. 학급당 학생 수를 두세 명 정도 줄이기 위해 교원을 증원하겠다는 논리도 맞지 않다. 이미 시작된 학령인구의 자연 감소를 감안하면 지금의 교원 수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머지않아 목표 달성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탈(脫)원전 계획과 관련해서는 소요 예산이나 재원은 차치하더라도 원자력을 대체할 수 있는 친환경 에너지원을 언제까지 어떻게 확보하겠다는 구체적인 청사진의 제시가 전혀 없다. 그저 원자력의 위험만 강조하며 전기요금 인상은 없을 것이라는 달콤한 말만 되뇐다. 건강보험료 인상 없이 실손보험이 필요 없을 수준으로 건강보험의 급여 범위를 확대하겠다는 계획에 이르면 아예 할 말을 잃는다.

경제 전망도 낙관적이지 않고 우리 경제의 체질도 과거와 같은 고도성장은 꿈도 꿀 수 없다. 결국 이들 정책을 집행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지속적으로 국가 채무를 대폭 늘리는 것뿐이다. 물론 이 빚은 모두 우리 딸과 아들 몫이다.

이런저런 걱정에 대해 정부 인사들은 한결같이 앞으로 5년간은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이후는 어쩌란 말인가. 5년 후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지극히 무책임한 소리다. 국민은 입신(入神)의 경지에 오른 지도자를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한 치 앞도 보지 못하고 당장 눈앞의 환호성에 취해 대책 없는 선물 보따리만 풀어놓는 청맹과니도 괜찮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좀 더 먼 앞날을 내다보고 차근차근 수를 내는 그런 정부이기를 바랄 뿐이다.

김영수 < 서강대 교수·사회학·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 grumpy@sog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