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1인가구 시대

입력 2017-08-23 18:17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


1973년 영국 서머랜드호텔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해 3000여 명의 투숙객 가운데 50여 명이 사망했고, 400여 명이 다쳤다. 가족 단위 투숙객들은 서로를 찾아 함께 사력을 다해 불길을 피했으며, 대부분 생존했다. 희생자들의 대부분은 친구 등과 같이 온 투숙객들이었다. 생존자 면접 등을 통해 이런 결과가 나온 원인을 분석한 심리학자들은 가족의 유대, 신뢰가 위기 상황에서 놀라운 대처능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다.

가족은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인류사회를 지탱해 온 기초적인 사회화 기관, 1차 집단으로서 역할을 해왔다. 미국 인류학자인 조지 피터 머독은 “가족은 부부와 그들의 자녀로 구성되고, 주거와 경제적인 협력을 같이하며 자녀의 출산을 특징으로 하는 집단”이라고 정의했다. 가족의 형태가 시대마다, 국가마다 다소 다르긴 하지만 머독이 정의한 데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가족은 최소 2명 이상의 소집단이라는 점을 가정하고 있다.

최근 가족의 의미가 급격하게 달라지고 있다. 1인가구가 크게 늘어나면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부부+자녀 가구’가 전체 가구의 32.3%로 가장 많았다. 1인가구(27.2%), 부부가구(21.2%)가 뒤를 이었다. 2019년부터는 1인가구(29.1%)가 가장 높게 나타난다.

2045년엔 1인가구 비중이 36.3%로 높아져 부부가구(21.2%), 부부+자녀가구(15.9%)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전망됐다. 지난해 미국 뉴욕, 일본 도쿄와 런던 파리 등 유럽 주요 도시들의 1인가구 비중은 40%대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1인가구 급증 이유로 개인화, 정보기술(IT)을 비롯한 소통수단 발달, 남녀평등 의식 확대, 여성의 경제활동 증가 등을 꼽는다. 미국 심리학자 칙센트 미하이는 “인간이 지금처럼 남들과 어울려 사는 것에 무능했던 시대는 인류 역사상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홀로 가구’가 늘면서 신풍속이 생겨나고 있다. 혼술(홀로 술), 혼밥(홀로 밥) 등은 일상어가 됐다. TV에서는 홀로 사는 연예인의 일상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다. 가전과 식품, 가구업계 등은 ‘싱글 마케팅’에 힘을 쏟고 있다.

어두운 면도 있다. 혼자 산다는 것은 자유·여유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외로움에 봉착할 수 있다. 고민이나 고충을 털어놓을 기회도 적다. 고독사는 한 해 1200명을 넘는다. 고독사는 50대 이상이 많지만, 지난해 20·30대도 17.1%나 됐다. 1인가구의 빈곤율은 47.2%로 전체 가구(평균 13.7%)의 3.5배에 이른다.

1인가구 증가로 가족이 수행하던 사회적 기능이 약화될 수도 있다. 사회변화에 맞게 복지·교육 정책 등을 더 정교하게 짜야 할 필요가 있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