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

입력 2017-08-10 18:48
세수 줄고 지출 늘것이란 한은 경고
복지정책 선후·경중 따져 조정해야
5년 이후 중장기 재정추계도 내놔야


급격한 저출산·고령화로 한국의 재정지출이 예상보다 매년 2조8000억원씩 추가될 것이라는 한국은행 보고서(‘인구구조 변화와 재정’)가 나왔다. 향후 50년간 140조원이 더 필요하다는 경고다. 건강보험 확대, 기초생활보장 확충 등 수십조원씩 필요한 ‘문재인 복지’가 연일 발표되고 있지만 이런 정책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상태로도 그렇다.

‘건강보험 보장 강화정책’에 따라 더 필요한 재정만 30조6000억원이다. 보수적으로 계산했을 정부 안(案)으로, 5년치만 그렇다. 어제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제1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에 따른 소요 예산도 3년치만 4조8000억원이다.

대통령 선거 공약이었던 ‘기초연금 월 30만원 인상 법제화’도 곧 시작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모든 국민이 인간답게 살 권리를 누릴 최저선 보장정책(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광복절에는 국가유공자 예우강화방안, 공상(公傷) 경찰관·소방관 지원확대책도 나온다고 한다. 하나같이 적잖은 재정을 투입해야 할 조치들이다.

누구도 낙오되지 않고 최소한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사회안전망을 확충해나가는 작업은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재정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복지정책의 선후(先後)와 경중(輕重)을 가리지 않으면 혼란이 불가피하다. 예산 조달은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다. 지속가능한 정책이 되려면 안정적인 재원부터 확보돼야 한다. “현 정부 임기 내에는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넘어갈 일이 아니다. 중장기 소요 재정 추계와 확보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저출산 고령화와 함께 찾아온 저성장의 ‘뉴 노멀’ 시대에 재정 전망은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 생산가능인구는 10년 뒤 6.8% 줄어들고 20년 뒤엔 17.8% 감소할 것으로 예고돼 있다(OECD). 세수(2015년, 소비세 제외)가 170조원에서 2065년 123조원으로 급감할 것이라고 한국은행 보고서는 경고했다. 이런 상황에서 늘려나가는 복지는 나랏빚 확대를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

구조조정 없는 복지 확대가 야기하는 것은 재정 악화만이 아니다. 6세 미만 아동의 입원비를 전액 의료보험에서 지급하자 ‘공짜 입원 소동’이 벌어졌던 2006년의 소동은 도덕적 해이의 전형적인 사례다. 부작용이 심각해지자 2년 만에 본인 부담 10%를 지우는 것으로 조정됐지만, 대부분의 복지프로그램은 한번 시작하면 중단이 어렵다.

유럽국가들의 앞선 고민을 볼 때 고비용의 복지전달체계를 어떻게 효율화할 것인가도 더없이 중요한 과제이지만 진지한 고민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보편적 복지 국가로 가자며 보편적 증세는 피한 채 세수효과도 불확실한 선택적 부자증세로 방향을 잡은 것은 이제라도 재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