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윤의 '중국과 中國' (22) 현지화의 세 단계] 동류(同類)로 여겨야 친구(親舊)가 된다

입력 2017-08-07 18:46
류재윤 <한국콜마 고문 >


중국에서 좋은 파트너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성공적으로 합작을 시작했다고 해도 끝까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매우 적다. 그런데 우리와 비교해 보면 중국 사람들은 친구끼리 오랜 기간 합작할 때가 매우 많다. ‘계란을 한 광주리에 담지 않는다(鷄蛋不能放在一籃子里)’는 중국인 사이에 보편적인 위기관리 방식이다. 분산 투자로 수익은 줄어들 수 있지만 리스크 역시 감소한다. 동업이 많은 이유다. 그렇다면 한·중 간 성공적인 동업이나 합작이 드문 것은 오히려 한국 사람들이 서투르기 때문이 아닐까. 중국과 합작하다 보면 “못 믿겠다”고 말하는 이가 많다. 안타깝게도 필자는 거꾸로 중국 친구들로부터 한국하고 사업하기 어렵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역시 신뢰를 그 첫째 이유로 꼽는다. 쌍방이 서로에게 신뢰를 문제삼는 이상한 상황이다. 누가 옳은가.

'아는 이'와 '모르는 이'는 달라

중국인들의 ‘아는 이(내집단)’와 ‘모르는 이(외집단)’에 대한 차별적인 표준을 이해하자. 내외(內外)에 대한 엄격한 차별대우는 중국인에게 두 인상을 갖게 한다. ‘의리 있는 중국인’과 ‘믿지 못할 중국인’이다. 페이시아통 전 베이징대 교수는 중국인이 행위 및 판단을 하기 앞서 나와의 관계를 먼저 고려한다고 했다. 관계의 유무 및 원근(遠近)에 따라 다른 잣대를 쓴다. 가오쉬둥 런민대 교수는 이를 인정자장(人情磁場)으로 설명한다 “혈연관계를 기초로 인정 자력(磁力) 범위를 넓혀간다. 이 인정자장의 담장 안에서는 뭐든 할 수 있다. (반대로) 중국인들이 모르는 곳에서 모르는 환경 속에서는 몹시 예의를 안 차리거나 규칙을 지키지 않는 이유다….”

중국 건축의 높은 담장은 중국인의 (모르는 이에 대한) 폐쇄성과 차등성을 상징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사업을 함께하자는 중국인들은 너무도 친절하고 적극적이다. 그러다 보니 “믿고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완전히 딴판”이라는 한국 기업들의 푸념이 많다. 정말로 속이려고 그렇게 친절한 척한 것인가, 아니면 도대체 뭔가. 리우쓰딩 베이징대 교수는 “중국인은 내외(內外)가 너무 분명해 외국인을 애초에는 구분의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처음 접하는 외국기업 등에 대해 ‘배타성’과 ‘차별’이 보이지 않고, 그래서 외국기업 등은 오히려 친절이라는 일종의 ‘역차별’을 누리게 된다고 설명한다.

페이시아통 교수는 ‘차서격국(次序格局)’이란 용어로 중국인의 사회관계망을 소개했다. 차서격국을 풀어보면, 사람과의 관계를 친소원근에 따라 매긴 차등적 순서라 할 수 있다. 이런 차등적 대우(잣대)가 사회관계에서 일종의 규범이 된다.

거리가 먼 관계는 냉담한 관계 또는 배척관계와 다르다. 외국인과 접촉할 때의 첫 번째 규범은 예의범절이다. 즉 외국인을 손님으로 여길 때는 예로 대한다(以禮相待). 오늘날 손님을 맞이하는 구체 형식은 변했을 수 있으나 손님의 예로 외부인을 맞이하는 문화는 여전히 광범위하고 뿌리 깊다. 심지어 이런 손님에 대한 예우는 자국 회사의 대우보다 더 나은 경우가 많다. “좋은 사업 또는 제품을 가지고 들어 오니 당연하다”고 단순히 생각했다면 어리석다. 이런 우호적인 특혜에도 문화적인 요소가 작동하는 것이다. 차서격국에 비춰보면 모순 같지만 그렇지가 않다. 즉 차서격국 문화 속의 중국인 경영자는 외국인(또는 외국회사)을 비교 대상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에 ‘아직은’ 차서격국의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 즉 중국에 처음 발을 딛는 외국인들은 우선 ‘손님’으로서 대접을 받게 된다.

관계의 정도에 따라 차등 대우

하지만 이제 중국 사회에 섞이게 될수록 본격적으로 이 시스템이 작동된다. 즉 외국 측은 특례를 받던 손님의 처지에서 엄청난 배척을 받기 시작한다. 이류(異類)의 단계에서 받는 당혹과 회의감은 이전의 친절 및 호의로 인해 더욱 배가된다. “도대체 속을 알 수 없다.” 심지어 배신의 감정이 생긴다. “중국인들은 철저히 실리주의”라고 성급히 결론을 내리게 되며 이런 문화압력으로 머리를 저으며 퇴출을 고려한다.

세 번째 단계인 동류(同類)에 이르러야 한다. ‘이류(異類)’로서의 단계는 중국의 문화 속에서 겪어내야 하는 문화충격(또는 압력)이다.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현지화를 실천해갈 때 중국인은 우리를 이제 친구(同類)로 여기게 될 것이다. 리우 교수는 강조한다. “중국의 이런 차서격국 문화에는 친소(親疏)원근의 차이는 있지만 국적(國籍)의 차이는 없다”고 말이다.

류재윤 <한국콜마 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