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태의 데스크 시각] 대접 못 받는 전문병원

입력 2017-07-30 17:42
박영태 바이오헬스부장 pyt@hankyung.com


요즘 전문병원들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전국에 실력 있는 중소병원을 육성하겠다며 6년 전 전문병원 지정 제도를 만든 정부가 미덥지 못해서다. 정부가 내놓는 정책마다 전문병원들이 설 자리를 점점 좁게 만든다는 볼멘소리까지 나온다.

특수의료장비 설치 기준이 대표적이다. 병상 수가 200개 미만인 병원에선 컴퓨터단층촬영(CT)과 자기공명영상(MRI) 장비를 설치할 수 없다. CT, MRI 검사를 병원들이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정부가 병원 내 감염관리를 위해 병상 간 거리 규제를 강화하면서 전문병원들이 날벼락을 맞았다. 최대 4인실만 허용되고 병상 간 간격을 1m 이상으로 넓혀야 하기 때문이다. 내년 말 이 제도가 시행되면 전문병원들마다 병상 수가 적게는 20%, 많게는 40% 줄어든다.

CT·MRI도 못쓸 판

병상 수 감소는 수익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적잖은 전문병원들이 CT, MRI 등을 쓸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는 점이다. 웬만한 대학병원보다 낫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오는 환자들이 이들 장비조차 없다는 걸 알면 더 이상 찾지 않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물론 병상 수가 모자란다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인근 병원들에서 장비를 같이 쓰겠다는 동의서를 받으면 된다. 이들 병원의 전체 병상 수가 200개를 넘으면 된다. 하지만 부작용이 적지 않다. 안과 이비인후과 등 입원 수요가 별로 없는 병원들도 이 규정에 맞추느라 불필요한 병상을 유지하거나 다른 병원에서 병상을 채우느라 애를 먹고 있다. 14년 전에 만들어진 낡은 제도 때문이다.

전문병원에만 허용된 ‘전문’ 간판에 포털업체들이 태클을 걸고 나선 것도 부담이다. 동네의원들까지 전문병원 행세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는 111개 전문병원에만 광고 등에 ‘전문’ 용어를 쓸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 때문에 비(非)전문병원들이 특정 질환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병원이라고 광고하는 데 차별을 받는다는 게 포털업체들 주장이다. 포털이 일반 병의원을 두둔하고 나선 이유는 뻔하다. 환자들의 알권리를 내세우지만 사실은 인터넷 광고를 늘리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 그런데도 보건복지부는 의견 수렴을 한다는 명분으로 지난달 전문병원과 포털 관계자들을 불러 회의까지 했다. 전문병원 입장에선 포털의 억지 주장을 들어주는 듯한 정부 태도가 못마땅할 수밖에 없다.

'전문' 간판까지 시빗거리

복지부는 지난달 3기 전문병원 지정 심사를 위한 신청을 받았다. 신청 병원은 127개였다. 3년 전 2기 전문병원 신청 병원 수(133개)보다 줄었다. 전문병원 제도가 안착된 만큼 200곳 이상이 신청할 것이라던 복지부는 단단히 체면을 구겼다.

문재인 정부는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통해 지역사회 중심 의료체계를 강화하고 지역 간 의료서비스 격차를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의료서비스를 환자 중심으로 바꾸기 위해서다. 전문병원은 새 정부가 내세우는 보편의료 실현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존재다. 대학병원을 가지 않고도 가까운 전문병원에서 수준 높은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전문병원 제도가 도입된 지 6년밖에 안 됐다. 전문병원 덕분에 의료서비스 질이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오긴 하지만 갈 길이 멀다. 전문병원이 제대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정책 배려가 필요한 때다.

박영태 바이오헬스부장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