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제로시대' 난제들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5가지 딜레마
[ 이상열 / 김일규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2일 인천국제공항공사를 방문해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0) 시대’를 약속한 뒤 정부 부처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17일 비정규직 중에서도 파견·용역 등 간접고용이 많은 공기업 10곳과 긴급 회의를 열기로 하는 등 정부의 공공기관 정규직화 작업이 본격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늘어나는 인건비를 누가 부담할지, 노노(勞勞)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지 등 복잡한 난제가 예고되고 있다. 그 어느 것도 해결이 만만치 않아 정부가 정규직화 방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논란이 거세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1) 늘어나는 인건비 누가 부담
연 3000만원 인상 땐 3.6조 추가 비용…공공요금 인상 불가피
무엇보다 소요 재원을 누가 부담하느냐의 문제가 불거질 전망이다. 공공기관이 직접 고용하고 있는 기간제 근로자는 물론이고 파견·용역 등 간접고용 인력까지 포함한 비정규직 전체를 정규직으로 전환할 경우 인건비 대폭 증가는 불가피하다.
16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332개 공공기관이 직접 고용한 비정규직 인력은 3만6499명, 간접고용 인력은 8만2264명으로 모두 11만8763명이다. 한국전력 인천공항공사 등 주요 공기업은 간접고용 인력 연봉이 약 2400만~3000만원으로 정규직(약 8500만원)의 30% 내외에 불과했다. 공공기관 비정규직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연봉을 기존보다 연 1000만원 인상하면 매년 약 1조2000억원, 연 3000만원을 올리면 3조6000억원의 인건비가 늘어난다.
2016년 기준으로 332개 공공기관 중 영업이익을 내는 곳은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101곳 뿐이다. 나머지 231곳은 적자를 보고 있다. 이들 기업은 정규직 전환에 따른 인건비 상승을 감당할 여력이 없다.
박기성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늘어나는 인건비는 결국 국민이 세금이나 서비스 이용료 인상으로 지원해주거나 아니면 공공기관이 인건비, 대국민 서비스 품질 유지를 위한 투자비 등 비용을 감축해 충당해야 한다”며 “국민과 공공기관 중 누가 부담하느냐를 놓고 논란이 예상된다”고 했다.
(2) 노노갈등 해소 어떻게
고통분담 나눠야 하는 기존 정규직 노조, 양보할까
‘노노 갈등’을 해결하는 것도 난제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상당수 공공기관은 늘어난 인건비 부담을 기존 정규직 임금을 동결·축소하는 방식으로 해결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비정규직을 본사의 정규직으로 전환한 비율이 높은 공기업일수록 기존 정규직의 고통 분담 압력이 커질 공산이 크다.
서울의 한 사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은 정규직 노조들이 조용히 있지만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실제 진행되면서 자신들이 임금 협상 테이블에서 불이익을 받는 게 확실해지면 노노 갈등이 심각해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의 상급단체가 다른 경우 노노 갈등은 더 커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가령 인천공항공사는 정규직이 한국노동조합총연맹 공공노련에 속해 있지만 용역근로자 상당수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에 가입해 있다.
(3) 비정규직간 형평성 문제 불거질 수도
소외된 민간부문 비정규직과 소득격차 확대
민간부문 비정규직과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연내 정규직 전환이 이뤄지는 공공기관 비정규직과 달리 민간 기업에 고용돼 있는 기간제 근로자나 파견직 등은 상당기간 비정규직 신분을 유지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중소기업 등에 근무하는 영세 비정규직 근로자는 대기업 비정규직은 물론이고 공공부문 근로자보다 적은 급여를 받아 소득 격차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한 노동 전문가는 “공공기관이 모두 정규직만을 고용하면 공공부문 일자리 선호 현상은 갈수록 커지고 민간 부문 용역직은 갈수록 기피할 것”이라고 했다. 한 경제부처 국장은 “중소기업의 청년 구인난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4) 청년층 취업시장 왜곡 가능성
신규 채용 여유 없어…청년 취업난 가중될 듯
전문가들은 공공기관의 인건비 상승을 무릅쓴 정규직화는 중장기적으로 청년층 취업준비생의 취업난을 가중시킬 우려도 있다고 설명한다. 2013년 임금피크제 시행 이후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늘어나면서 청년취업난이 심해진 현상이 재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강식 항공대 경영학부 교수는 “332개 공공기관 중 영업이익을 내는 곳은 3분의 1 정도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적자를 내고 있다”며 “적자 공기업까지 정규직화를 무리하게 추진하면 중장기적으로 청년 채용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5) 중소기업 육성 정책과 충돌
영세 용역·외주업체 폐업…고용시장 유연성 떨어질 것
공공기관의 정규직화 작업이 완료되면 그동안 환경미화, 경비 부문 등에 근로자를 제공해온 용역·외주업체가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작년 상반기 기준으로 용역·외주업체는 1700곳(실적을 보유한 업체 기준)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들 대부분이 영세 중소기업이라는 점에서 중소기업을 육성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과 상충되는 측면이 없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정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공기관 공급 인력이 끊기면 상당수 영세 용역·외주업체는 폐업하게 될 것”이라며 “이는 다시 국내 고용시장 전체의 유연성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상열/김일규 기자 mustaf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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