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훈의 데스크 시각] '일자리 대통령' 제대로 하려면

입력 2017-05-15 18:27
조일훈 산업부장 jih@hankyung.com


문재인 대통령은 운이 좋은 사람이다. 집권 초 이렇다 할 만한 걸림돌이 눈에 띄지 않는다. 미·중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협력적이다. 트럼프와 시진핑은 총 한 방 안 쏘고 한반도의 뇌관인 김정은을 반쯤 죽여놨다. 북핵 정세에 편승한 일본은 재무장을 위해 냄비처럼 들끓고 있다. 그럴수록 중국의 대북 압박 강도는 세질 수밖에 없다. 새 정부로선 남북한 간 대결에 따른 긴장을 피하면서 전략적 유연성을 가질 수 있는 기회다.

경제도 순항 중이다. 수출과 투자가 살아나고 소비도 잘 버티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 개방경제의 버팀목인 세계 경제가 상승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앞으로 2년은 끄떡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조선 기계 철강 석유화학 등과 같은 전통산업도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노동시장 적폐도 청산해야

문 대통령은 집권 초기의 순풍을 활용해 나라 전체의 분위기를 생산적이고 전향적으로 바꿔나가는 지도자가 돼야 한다. 부정부패를 일소하고 기득권을 해체하는 적폐 청산에만 매달리는 것은 금물이다. 과거 대통령들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늘 과유불급을 생각해야 한다.

가장 큰 기회이자 도전은 노동시장 구조개혁과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3일 취임 첫 행보로 인천공항공사를 찾아 ‘비정규직 1만 명의 정규직 전환’을 선언했다. 이를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대통령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이던 직원들을 보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이를 민간 부문에까지 확산시키려면 생각해볼 대목이 적지 않다. 총 노동비용 문제다. 특정 시점에서 한 국가의 국제 경쟁력은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총 노동비용에 따라 결정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최저임금 인상 등은 생산성 향상을 동반하지 않을 경우 해당 국가 또는 기업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관건은 기업들이 스스로 총 비용을 관리하고 조절할 수 있도록 노동시장 경직성을 해소하고 전투적 노동조합의 기득권을 약화시킬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반드시 정규직과 노조의 양보가 있어야 한다. 기득권이 보수에만 켜켜이 쌓여 있는 것이 아니다.

청년들, 재정 일자리 좋아할까

청년 일자리 정책도 더 실질적이었으면 좋겠다. 한국 최고 전자도시에서 지방 중소도시로 점차 영락해가고 있는 경북 구미. 이곳에서 청년 관련 회의를 열어보길 권한다. 중국과 베트남 등으로 떠나간 수많은 사업장의 터를 둘러보면서 그 현장에서 젊은이들의 고용 문제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재벌 기업들의 해외 사업장 하나를 골라 한국으로의 귀환도 제의해봄 직하다. 인건비 보조해주고, 세금 깎아주고, 규제 풀어주겠다고 약속하면 된다. 어려울 것도 없다. 이미 트럼프와 아베, 메르켈이 다 해본 일이다.

상법 개정안, 재벌 개혁도 좋지만 일자리 하나만큼은 실질적으로 늘릴 수 있기를 고대한다. 공공 일자리에 재정을 투입하는 것은 우선순위가 아니다. 청년들이 그런 일자리를 좋아할 리도 만무하다.

정경유착이 아니라 정경 협력을 하면 일자리 문제의 절반은 저절로 풀린다. 정부는 기업에 동기를 부여하고 민간은 혁신을 통해 고용을 늘리는 선순환을 만들어야 한다. 청년층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는 문 대통령은 얼마든지 이런 방향의 구조개혁을 성공시킬 수 있다.

조일훈 산업부장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