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기업 사장들 인터뷰해 책 내…자신의 사업도 변화하는 계기 돼
"능력 타고나지 않은 보통사람들, 직원생계 책임에 혁신 골몰하더라"
[ 임근호 기자 ]
“사장(社長)은 참 고통스럽고, 멋지지 않은 자리라는 것을 느꼈어요.”
서울 상암동 MBC 지하 카페에서 만난 방송인 서경석 씨(사진)는 “중소기업 사장 열다섯 명을 만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집에는 몇 달 동안 한 푼도 가져다주지 못해도 직원 급여만큼은 밀리지 않으려 하고, 이익이 생기면 자동차를 고급으로 바꾸는 게 아니라 신제품 개발을 먼저 하고, 본인이 가장 힘들지만 직원들 앞에서는 안 힘든 척 웃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는 이창희 진코퍼레이션 대표, 권오섭 엘앤피코스메틱 회장, 강혜근 코베아 회장, 이연복 목란 사장 등 업종별로 15명 사장을 인터뷰해 지난달 《사장하자》란 책을 펴냈다.
작년과 재작년 1년 반 동안 YTN에서 ‘강소기업이 힘이다’를 진행한 그는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사람 이야기를 충분히 듣지 못해 아쉬움이 있었다”고 책을 낸 이유를 설명했다. “사장 스무 명을 만나 볼 계획이었어요. 열 번째 인터뷰가 끝나고 안 되겠다 싶었죠. 모두 하나같이 드라마 같은 삶이어서 두세 명의 이야기만으로도 책 한 권을 만들 수 있을 정도였거든요.”
영웅담은 아니라고 했다. 서씨는 “우리처럼 다들 평범한 사람들”이라며 “열다섯 사장 중에 경영 능력이나 음식 솜씨를 타고난 사람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연복 셰프만 해도 16세에 중국집 배달로 시작했다고 한다. 어느 날 요리도 배워볼까 하고 생각을 바꿨고, 목표가 명확해지니 누가 시키지 않아도 집중하고 몰입했다는 것이다.
“성공한 사장의 또 다른 공통점은 스스로 생각을 바꾼 사람들이라는 거예요.” 서씨는 김병기 아이원스 사장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부품을 만드는 회사다. 김 사장이 대기업을 상대로 처음 영업할 때 누구도 그의 명함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
밤새 고민한 그가 내놓은 방안은 명함 뒤에 500원짜리 동전을 스카치테이프로 붙이고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십시오’라는 문구를 넣은 것이었다. 3일 만에 200명에게 명함을 전했다. 결국 그 대기업에 490만원짜리 기계 두 대를 팔았다. 아이원스는 올해 매출 1000억원을 바라보는 회사로 성장했다.
서씨도 사실 어엿한 사장이다. 지난해 짬뽕 전문점과 카페를 차렸다. 직원과 아르바이트생을 합하면 함께 일하는 이들이 15~20명에 이른다. 그는 “사장들을 인터뷰하면서 내 사업에도 변화가 생겼다”고 했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기를 생각하게 됐어요. 지금 짬뽕집이 점심엔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잘돼요. 메뉴가 짬뽕, 짬뽕밥, 군만두, 탕수육 딱 네 개였어요. 그런데 최근 중화치킨과 크림새우 등 신메뉴를 개발해 추가했어요. 당장 매출 변화는 없지만 사람들 입맛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거잖아요.”
카메라 모듈과 영상처리 솔루션을 만드는 엠씨넥스의 민동욱 사장이 그랬다고 한다. 보통 위기가 닥치면 1~2년은 고생하기 마련인데 엠씨넥스는 잠시 주춤하다 매출이 더 크게 늘었다. 국내 사업이 좋을 때 미리 일본과 대만에 영업소를 세워 수출을 도모하고, 중소·중견기업 상대로 사업이 잘될 때 꾸준히 대기업 문을 두드린 것이 비결이었다.
서씨는 “책 제목을 ‘사장하자’라고 지었지만 맹목적으로 창업을 부추기려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누구나 그렇듯 제가 소개한 사장들도 다 돈 벌려고 사업해요. 하지만 돈만 생각했으면 괴로움을 참으면서 사업을 유지하지는 못했을 거예요. 어느 순간 직원들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사장으로서의 사명감’이 생긴 거죠. 규모가 크든 작든 훌륭하게 사장하시는 분들에게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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