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I:뷰] 보고있어도 보고 싶은…손현주라는 '보통사람'

입력 2017-04-04 07:54
수정 2017-04-04 08:50
영화 '보통사람' 성진 役 손현주 인터뷰
"'보통사람'은 가족애(愛)에 대한 이야기"
"실제 가족들이 작품 선택에 큰 영향"



"우리 막내 아들이 열 다섯이에요. 질풍노도의 시기라서 청불(청소년관람불가) 영화는 안 해요."

배우 손현주의 기준은 명료했다. 대학생인 딸과 중학생인 아들도 볼 수 있는 영화. "아이들이 큰 다음에는 청불 영화를 할 수 있겠다"고 너털웃음을 짓는다. 배우라는 특수한 직업이기에 그의 삶이 특별하리라는 것은 선입견이었다. 손현주는 오늘을 살아가는 지극히 평범한 아버지다.

영화계에서 '평범함'에 대한 연기를 논하자면 손현주를 빼놓을 수 없다. 어디선가 본 듯한 익숙한 모습으로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 이야기 속에 스며든다. 과시하는 듯한 액션보다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호흡으로 영화 속 주어진 이야기에 몰입하게 한다. 평범한 얼굴로 현실의 연기를 하지만, 관객에게는 결국 비범하게 다가온다.

최근 개봉한 '보통사람'(김봉한 감독)은 손현주의 장점이 백 퍼센트 발휘된 영화가 아닐까 싶다. 김봉한 감독은 손현주 덕에 이 영화가 제작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손현주는 되려 "나 때문에 투자를 못 받았다"고 미안함을 드러냈다.

"시나리오를 보고는 대한민국 4대 메이저 제작사들이 다 좋다고 했어요. 글쎄요, 이야기에 적잖은 부담이 있었겠네요. 처음에 김 감독을 상암동 DMC 어느 사무실에서 만났는데 녹차 티백에 물 반만 따라 주더라고요. 뭔가 안돼 보였어요. 여러 가지 문제들 때문에 2년이 걸렸네요. 언젠가 하겠지 하며 기다리다가 결국 개봉까지 왔습니다."

하루아침에 엎어질지 모르는 시나리오로 손현주를 기다리게 했던 원동력은 김봉한 감독과의 약속이었다. 그는 "촬영은 하고 있는데 임금 걱정을 하더라"면서 "회식은 내가 해주면 되니까 같이 나눠 먹으면 좋겠다 싶었다.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작은 약속들을 잘 지켜줘서 고맙다"라고 인사했다.


'보통사람'은 1980년대 보통의 삶을 살아가던 강력계 형사 성진이 나라가 주목하는 연쇄살인 사건에 휘말리면서 가족과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게 되는 이야기다.

손현주는 형사 성진 역을 맡아 아내(라미란)과 몸이 불편한 아들을 위한 비겁한 선택을 한다. 극 중 성진은 관객의 손가락질 받아 마땅할 만 한 일들을 하지만 공허한, 슬픈 눈빛은 왠지 모를 연민을 자아낸다. 그는 "난닝구(러닝셔츠)가 아주 자연스럽지 않았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정치적인 이야기가 부각되기는 하지만 가족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아내도 말을 못하고, 아들도 아파요. 극한 상황에서 가족을 지키려고 하는 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평범하고 보통의 일들이 어려운 시기에서 말입니다."

'보통사람'에는 우리나라 근현대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시대를 살았던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도 함께. "대학교 다닐 때 였는데, 마치 엊그제 같네요. 성진은 보통사람이었지만 그가 꿈꿨던 평범한 행복이 결국 욕심이었어요. 성진 때문에 자신이 사랑했던 동네 형과 가족들이 아픔을 겪죠. 사건의 모든 원흉이 아닌가 싶어요."

손현주는 '보통사람' 속 캐릭터 중 아내인 라미란에 대한 애착이 컸다. 라미란만 생각하면 가슴이 짠하고, 아팠다.

"라미란은 원래 대사도 있고 저와 티격태격 하는 부분도 많았어요. 그런데 감독과 상의를 통해 언어장애가 있는 캐릭터로 설정했습니다. 혼자 대사를 외워야 해서 좀 억울했습니다. 그때 예능프로그램 '언니쓰' 촬영할 때라 별나게 피곤한 척을 했거든요. 일부러 대사를 뺐나 싶었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 알게 됐습니다. 라미란이 수화를 했던 것은 신의 한 수였다는 것을요."

그는 아이들이 없으면 일에도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3개월 동안 부산 로케이션을 해야 했지만, 가족을 떠올리지 않은 날이 없었다. '보통사람'은 그래서 손현주에게 더 의미 있다.

"중산층이라는 표현이 요즘 없어진 것 같아요. 중산층이 많은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또 혼밥이다, 혼술이다 하면서 예전보다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더 많아진 것 같고요.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가 함께 사는 가정도 드물죠. 평범하게 산다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일이 됐습니다. '보통사람'은 정말 어렵지만, 그렇게 평범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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