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대한민국 한경의 제언] 인사가 만사다

입력 2017-03-13 18:17
수정 2017-03-14 06:35
학연·지연 배제…인재 공정하게 발탁하라

누가 집권하더라도 '여소야대'…야당도 수긍할 탕평인사 중요
밀실 인사 비판 피하려면 인사위원회에 외부 전문가 포함을


[ 홍영식 기자 ]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다.” 정부 출범 때마다 등장한 화두다. 학연과 지연 등을 배제한 공정한 인재를 발탁하겠다고 약속했다. 매번 선언에 그쳤다. 역대 정권은 크고작은 인사 실패로 역풍을 맞았다. 정실·보은·낙하산·회전문·코드 인사 논란이 끊이지 않으면서 ‘인사가 망사(亡事)’라는 비판을 받았다.

정권 실패는 곧 인사 실패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 출범 초 주요직 인사 실패는 국정 공백으로 이어졌다. 인사 실패는 정권 초부터 민심 이반을 불러온 주요 원인이기도 했다. 대선주자들이 인사 실패의 고리를 끊기 위한 방안 마련에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역대 대통령 모두 국무총리의 국무위원 제청권 실질적 보장, 부처 및 산하 기관장에 대한 장관 인사권 보장 등을 약속했다.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청와대가 인사권을 틀어쥐고 밀실에서 논의하다 보니 비선실세들의 개입 여지를 줬다는 비판을 받았다.

인사가 망사가 되지 않기 위해 대통령의 의지와 실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통령 측근 몇몇이 밀실에서 하는 ‘깜깜이 인사’에서 벗어나 공개 검증을 거쳐 누구나 납득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차기 정부는 ‘내 식구 챙기기’가 아니라 실질적 대탕평, 대통합 인사를 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문이다. 대선주자들이 ‘섀도 캐비닛(예비 내각)’을 통해 사전 검증을 받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통합, 대탕평 인사가 필요한 이유는 차기 정부는 역대 정부 어느 때보다 집권 초 더 열악한 환경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새 대통령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구성하지 않고 당선 직후 취임해야 한다. 공직선거법엔 ‘궐위로 인한 선거로 뽑힌 대통령 임기는 당선이 결정된 때부터 개시한다’고 규정돼 있다.

국무총리와 정부 조직을 이끌 각 부 장관이 임명되지 않은 채 새 정부가 출범한다. 새 각료들에 대한 검증 등 인선 과정과 청문회 과정을 거친 뒤 정부 조직이 제대로 가동되려면 대선 뒤 두 달가량 걸린다. 박근혜 정부 각료들이 새 정부 출범과 동시에 물러날 가능성이 높아 새 정부 초반부터 국정 공백이 생길 수 있다.

누가 집권하더라도 여소야대 국면이어서 야당이 특정 각료의 임명에 반대한다면 국정 공백은 더 길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야당도 수긍할 만한 대통합, 탕평형 인사를 선보여 사전 검증을 받도록 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물론 국정운영 능력은 필수 요소다. 탕평 인사와 능력에 따른 인사는 모순되는 것 같지만 인재를 폭넓게 등용할 경우 국가 전체의 역량을 키울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역대 정부에서처럼 자기 사람들만 챙기다가 ‘인사 참사’를 일으켜 극심한 국정 혼선을 불러오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탕평 인사가 필요하다는 게 이들의 주문이다.

인사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제도 운용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많다. 청와대엔 인사위원회가 있다. 비서실장이 위원장을 맡는다. 박근혜 정부에선 정책조정수석과 정무수석이 상시 참석 위원이었으며, 인사 대상자 해당 분야 수석이 배석했다.

인사위까지 통과된 인사안이 막판 뒤집히는 일이 적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의 한 참모는 “밀실 인사 비판을 피하기 위해선 엄격한 보안을 전제로 외부 전문가들을 인사위에 참석시켜 투명성을 높이고 공정성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역대 정부 인사 실패 사례는 일일이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김영삼 정부는 출범 초기 인사 10일 만에 재산 문제 등으로 장관 세 명이 옷을 벗었다. 김대중(DJ) 정부는 임기 말인 2002년 잇단 총리 후보 낙마 사태가 벌어져 인사 부실 검증 논란을 낳았다. ‘DJ 수첩’에 적혀 있는 사람이 대거 중용됐으며 임기 내내 비선라인 인사 개입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과 이념성향이 맞는 당시 ‘386 인사’들을 정권 초기부터 청와대 참모로 대거 발탁하면서 ‘코드·보은 인사’ 논란을 일으켰다. 이명박 정부는 ‘베스트 오브 베스트 인사’를 한다고 했으나 부실 검증 및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내각’ 파장을 낳았다.

홍영식 선임기자 yshong@hankyung.com